미시간호(湖) 등 미국 5대호에 호수 생태계를 급격히 변화시킨 외래종이 문제 된 적이 있다.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지중해에 서식하는 바닷생물들이 버젓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외래종들이 이렇게 멀리까지 이주하게 된 비밀은 바로 선박평형수에 있었다.
대양을 가로질러 화물을 나르는 대형 선박들은 항해의 안전을 위해 바닷물을 담고 다닌다.
화물을 부리고 난 빈 배는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 태풍 같은 심한 바람에 전복될 우려가 있는 데다, 프로펠러의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빈 화물선은 용량의 3분의 1정도 즉 10만톤급 유조선이라면 3만톤의 바닷물을 담아 되돌아온다.
이 바닷물을 선박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이라는 뜻에서 선박평형수라고 한다. 짐을 적재할 항구에 도달하면 이 물은 다시 쏟아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수백㎞를 여행하는 바닷물 속의 미생물과 물고기 등이다. 5대호에 사는 지중해 생물들이나,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고 있는 유럽산 홍합은 이렇게 우연히 ‘이민’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대부분의 유입종은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지만 강한 생존력과 번식력으로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이 적지 않다.
사람에 묻어 비행기를 타고 온 병원균이 전혀 면역력이 없는 환경에 심각한 타격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선박평형수로 인해 세계적으로 연간 100억 톤의 물이 옮겨지고 있으며, 7,000 종 이상의 생물이 이동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국제해사기구(IMO)는 2009년 밸러스트수(선박평형수) 협약을 적용키로 했다. 항구에서 선박이 배출하는 평형수 1㎥에 50㎛ 이상 생물체가 10개 미만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제한한다. 선박들은 물을 쏟아버리기 전에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생물체를 모두 죽여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 대다수 국가가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지만 IMO는 각국의 비준과 무관하게 적용일자부터 설정했다. 협약을 적용하는 국가가 소수라도 그 국가로 선박을 운항할 경우에는 규제를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오염방재사업단 김은찬 박사팀이 이에 대비한 연구를 해왔고, 해양수산부가 발의한 ‘선박평형수 관리법’이 국회 계류중이다. 최근 해양연 부설 남해연구소는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 수중생물학 분야 국제공인 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아, 선박평형수 처리장치에 대한 형식승인과 수중생물 생사판별에 대해 국제적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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