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절실한 농민에게 집중돼야 할 정부지원이 주말농장 등 부업ㆍ취미로 농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에게까지 돌아가는 등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농민의 기준을 허술하게 규정한 법규와 농림부의 관리부실, 농협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린 결과다. 정부는 앞으로도 2013년까지 농업ㆍ농촌종합대책으로 총 119조원을 투입하는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농민을 위한 추가지원을 검토하고 있어 '눈먼 돈'이 새나가지 않도록 제도보완이 시급하다. 관련기사 6면
2일 농림부 등에 따르면 현행 농업ㆍ농촌기본법 시행령은 농업인(농민)의 정의를 ▦1,000㎡(약 303평) 이상의 농지를 경영 또는 경작한 자 ▦농산물 연간판매액이 100만원 이상인자 ▦ 연간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3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다른 직업이 있어도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농민'이 된다. 이 같은 허술한 기준 때문에 220건에 이르는 농업ㆍ농촌종합대책을 비롯한 막대한 농민지원의 혜택이 딴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나마 농정당국이 고의 또는 태만으로 심사를 소홀히 해 낭비를 더욱 키웠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교사, 공무원 등 안정적 직장을 가진 9,700명 가량이 불법적으로 우대금리 등 농가부채경감 지원을 받았다.
감사원은 이들의 전업농 자격 여부를 확인한 뒤 지원금을 회수하도록 농협에 통보했지만, 이중 779명에게 나간 지원금이 회수되지 않아 지난 해 또 지적을 받았다.
농가부채경감 대상은 농민기준을 충족하면서 부부의 직장합산급여가 2,900만원 (2005년 연간 농가평균소득)에 못 미치는 직장인이나, 연간 매출액이 1억원이 안 되는 자영업자도 포함된다. 농림부와 농협은 현재 이 기준에 따라 001, 2002년에 빌려준 농가부채의 상환을 우대금리를 적용해 3~5년 연기해주고 있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도 지난해까지 주말농장이나 부업ㆍ취미로 농업에 사하는 직장인과 전업농을 구별을 두지 않고 보증을 서왔다. 감사원 등에 따르면 농신보가 2003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직장인에게 보증을 선 액이 2,922억원(전체의 6.6%)에 이르렀고, 이 기간 직장인의 보증사고로 농신보가 대신 갚아준 금액도 685억원이었다. 농신보 관계자는 "올해부터 업무방법서에 '담보능력이 있고 직장인이라고 판단되면 보증을 제한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고 해명했다.
정작 농사만 짓는 전업농은 예산이 부족해 지원을 받지 못한 사태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고에서 납입공제료의 50%를 지원하는 농업인 안전공제의 경우, 2004년 기준으로 혜택을 받은 직장인이 수만 명으로 추정됐는데, 예산이 부족해 납입공제료를 전액 자신이 부담한 농민이 3만7,000명(그해 가입자의 5.5%)에 달했다.
사실 농가지원금의 비효율적인 집행으로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농가 사정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업인 공제보험을 운용할 때 상시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후 순위를 두도록 바꿨다"면서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어, 일반적인 농민정의와 별도로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농민의 기준을 따로 정하도록 하는 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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