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제주도에는 러시아 어학원이 하나 생겼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 제주분교유치위원회가 이 대학 입학 예비학부과정(1년) 중 6개월의 교육과정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예비학부 어학원’을 세운 것이다. 당시 모스크바대학과 제주 분교 설치를 협의 중이던 제주도는 이 어학원 설립으로 제주분교 유치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어학원 설립 9개월이 된 지금, 모스크바대학 분교 유치작업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분교를 세워도 수익금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학측이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현재 국내 기업들과 연구산업 분야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제주도의 한 중견간부 A씨는 “정부가 제주국제자유도시에 걸맞은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개선에 미적거리면서 투자를 하려던 외국 교육 기관들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의 말처럼 제주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실제로 최근 외국 교육 기관들은 자체 재원투자보다는 유치를 희망하는 국가의 재정 지원이나 설비투자를 통해 분교를 설립하려고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실제 카타르나 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은 사업비 지원 등 국가차원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앞세워 유치에 나서고 있다.
도가 2004년 8월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과 분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도 지금껏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도 대학측의 학교부지 무상제공 요구를 받아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례가 없다”며 외국 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은 꿈도 꾸지 말라는 반응이다. 그나마 투자를 하겠다는 외국 교육기관에 대해서도 영리법인 설립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외국 교육기관들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제주에 분교 등을 설립하더라도 등록금 등 수익금을 한 푼도 본교로 송금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영리법인을 허용할 경우 소수 기득권층에만 혜택이 돌아가 교육 양극화를 부추기고 공교육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전교조 등 교육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탓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외국 교육기관 설립을 통해 국내 외국유학 수요를 흡수하고 외국유학생도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려대 권대봉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제주는 외국 교육기관들이 자신들의 지적자산을 투자할 수 있는 제도와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외국 교육기관 유치를 위해서는 이들에게 영리법인을 인정해 주고, 이들이 수익을 합리적으로 관리, 소유, 송금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외국 교육기관의 내국인 입학비율을 정해 놓은 것도 투자유치를 가로 막는 원인이다. 정부가 외국학교 설립초기 5년간 30%로 제한했던 내국인 입학비율을 정원의 최고 50%까지 허용키로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 관계자는 “외국 교육기관 대부분이 제주도에 투자할 경우 학생 모집이 쉽지 않아 초기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외국학교의 경영부담을 덜어 주고 외국 교육법인들의 투자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입학비율을 더 확대한 뒤 차츰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쟁국들은 이미 교육기관 유치를 넘어 외국의 고급 인재유치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의 유럽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와 미국 시카고대학의 분교를 설치한 싱가포르는 교수진과 학생 등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대학내 레저ㆍ위락, 의료시설들을 확충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시도 외국인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해외인재유치 장려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주대 양진건(교육학과) 교수는 “제주의 교육산업을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공교육과 교육서비스산업을 엄격히 분리하고 국내외 자본의 자유로운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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