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하는 독일
통독 이후 오랜 경기침체로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 하지만 2005년 메르켈 총리 취임 이후 독일은 불과 2년만에 유럽연합(EU) 리더국의 면모를 되찾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무엇보다 꽉 막힌 교통체증처럼 마비됐던 경제 전반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며 꿈틀대고 있는 것. 지난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투자가 되살아나면서 2.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2000년 이후 최고의 성장세를 보였고 올 들어서는 실업률도 한 자리 수로 떨어져 고질적인 실업 문제도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다.
경제 부상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메르켈 총리의 외교적 행보도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이달초 열린 G8 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 등의 굵직한 성과를 내는데 해결사 역할을 했고, EU 정상회의에서도 의장국으로서 새 헌법 초안 마련을 주도했다.
민관 협력의 국가 브랜드 캠페인
독일이 용트림을 하며 활력을 되찾는 데는 메르켈 총리의 개혁 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인데, 이 밑바탕에는 민관이 합동으로 펼치고 있는 국가 브랜딩 작업이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름아닌 독일 정부와 독일 경제계, 언론계 등이 힘을 합쳐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아이디어의 나라(Land of ideas), 독일’이라는 범국가적 캠페인이다.
2005년 독일 정부와 재계가 각각 200만 유로(25억원)씩 출원해 시작된 이 캠페인은 당초 독일 월드컵이 계기가 된 한시적 캠페인이었다. 이 캠페인의 집행조직인 FC도이칠란드 볼프강 뉘볼트 국장은 “당초 이 캠페인의 타켓은 외국보다는 우리 내부의 시민들이었다”며 “월드컵을 앞두고서도 오랜 경기침체로 독일 국민 자체가 깊은 회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독일 국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독일의 365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각종 이벤트를 벌여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 과학자, 발명가들을 배출한 아이디어의 나라’라는 자긍심을 독일 국민에게 불어넣었던 것. 침체에 빠진 독일을 되살리기 위해 우선 국민적 사기를 고취시키고, ‘우리는 독일인’이라는 통합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월드컵 이후 이 캠페인은 장기적인 대외 국가 브랜드 전략으로 전환돼 위르겐 투만 독일산업연맹 회장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글로스 독일 경제기술 장관, 슈타인마이어 외교장관 등 각계 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이 운영위에 참여하고 있다. 캠페인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 ▦독일 내적으로는 독일의 성취와 미래전망에 대한 국민적 신뢰 구축 ▦대외적으로는 매력적인 투자처,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땅, 발전된 기술과 경제의 중심지라는 홍보 ▦이를 통해 대내외에 독일의 긍정적 이미지를 장기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도 지난해 신년 연설에서 “독일은 아이디어의 나라”라며 “우리에게는 이제 이 아이디어를 혁신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와 연구개발자 유치 주력
독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 활력을 위한 외국인의 투자와 연구개발자 유치다. ‘아이디어의 나라, 독일에 투자하십시오’ ‘독일이 당신의 아이디어가 성공하도록 도울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전방적위적인 국제 홍보에 나서고 있는 것.
한국에서도 지난해 11월 안네테 샤반 교육연구부장관이 내한하는 등 ‘독일에서의 연구-아이디어의 나라’라는 모토로 독일 연구 기관을 소개하고 교류협력을 맺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독일의 연구기관 대표들이 수시로 방한해 심포지엄, 워크숍, 강연회 등을 개최하면서 국내 대학교, 연구기관 및 기업들과의 기술개발 협력을 구축,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독일
독일이 투자 유치를 위해 ‘아이디어의 나라’라는 이미지에 주력하면서도,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독일’이라는 장기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도 소홀하지 않다. 독일 외교부의 핵심 정책이 환경 문제와 테러 등 전지구적 위기를 완화하고 세계평화와 지속가능한 개발에 기여하는데 맞춰져 있다. 메르켈 총리의 적극적인 외교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는 독일이 통일 이후 경제대국으로 다시 부상하게 되면서 ‘패권국가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변 국가의 시선을 독일 역시 인식하고 있기 때문. 이런 우려의 해소를 위해 독일로서도 괴테 인스티튜트, 독일대외학술교류처(DAAD) 등이 나서 장기적인 학술 문화교류 등을 통한 긍정적인 독일상을 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전세계 90개국 174곳에 지사를 두고 있는 괴테 인스티튜트는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문화교류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연간 3,000억원대에 달하는 예산으로 독일어 교육, 문화교류 등을 활발히 벌여 ‘아이디어의 나라이자 평화와 환경을 사랑하는 독일’이라는 이미지를 각국의 시민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다지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親獨엘리트 양성소' 독일학술교류처
“친 독일파 육성을 통한 국가이미지 제고”
국가이미지 제고에 있어서 장기적이긴 하지만, 외국의 엘리트 인사를 아군으로 만드는 것 만큼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독일이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 중 하나도 바로 학술교류를 통한 친독일파 해외 엘리트의 양성이다.
이를 담당하는 곳이 독일학술교류처(DAAD)다. 외국인의 독일 유학과 연수를 지원하고, 외국에서의 독일어 및 독일학 진흥에 힘쓰고 독일인의 국외 유학도 돕고 있다. 장학생 선정위원회에는 600여명의 대학교원이 참여하고 있다.
2005년도 한해 예산만 2억4780만 유로(3,084억원). DAAD의 장학금을 지원받는 외국인 학생과 학자들의 규모도 매년 증가해 지난해 총 5,500명이 혜택을 입었고 이중 3만 3,981명이 독일로 유학온 외국인 학생이다.
현재 전세계 독일어 수강생의 3분의 2가량이 중유럽, 동유럽, 구 소련연방국가 출신으로 DAAD의 장학금 지원도 이곳에 집중돼 있는데, 향후 아시아 국가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의 경우도 서울 DAAD 정보센터(www.daad.or.kr)를 통해 유학상담을 제공하고 있는데, DAAD 장학프로그램을 받은 학생들의 전공분야가 음악 인문학에 치중돼 있다가 최근 자연과학과 공학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DAAD의 이 같은 지원 활동은 친독일파 양성 뿐만 아니라 독일 대학의 국제성과 선호도를 높이고 독일어의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독일이 전세계 차세대 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교류재단이 이 같은 DAAD의 역할을 맡아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을 지원하고 있지만, 열악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DAAD의 아시아 대양주국 토카 푸옹 과장은 “독일과 한국의 학술적 상호교류는 아직 불균형 상태로, 독일 학생들 또한 장학금을 통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려돼야한다”며 “독일 학생에 대한 한국 측의 지원정책이 개선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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