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양국 정부의 공식 서명이 이뤄졌지만 FTA 발효를 위한 최종 관문인 미국 의회에서의 비준동의 전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당장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미 민주당 지도부는 서명식 전날인 29일 발표된 공동성명을 통해 현재와 같은 협상 내용으로는 한국 및 콜롬비아와의 FTA 체결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불행하게도 기존에 합의된 한미 FTA는 (미국에 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면서 “이 협정은 한국시장에 대한 미국 제조업체들의 진입을 지속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비관세 장벽 문제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나아가 “지난해 한국은 70만 대를 미국에 수출한 데 비해 미국은 5,000 대도 한국에 수출하지 못한 자동차 부문에서 특히 그렇다”면서“이들 숫자는 자동차 부문을 넘어 협정 자체에 대한 지지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신통상정책에 따라 추가협상의 대상이 된 노동 및 환경관련 조항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자동차 부문을 한미 FTA 반대의 최대 쟁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자동차 부문과 관련해선 한국이 추가 협상 또는 재협상을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고 미 무역대표부(USTR)측도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 수긍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민주당의 반대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미 행정부의 효과적인 설득이지만 2008년 미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쉽사리 태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한 고위 소식통은 “대선이 있기 때문에 한미 FTA 문제가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간의 정치게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면서 “이 문제가 정치화하면 FTA 반대가 조직적 움직임으로 강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 9일 미 최대 노조연합체인 AFL-CIO 주최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행사에서 “한미 FTA가 비준되면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비준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유력한 대선주자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 민주당내에 그 영향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민주당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어떤 타협을 이루는가에 따라 또다시 추가협상을 벌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FTA 협상 대상은 아니나 한국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문제도 여전히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미 축산업의 중심지인 몬태나, 오리건, 콜로라도, 네브래스카주 등 이른바 ‘쇠고기 벨트’출신 의원들이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40~50명이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FTA 비준 동의과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맥스 보커스(몬태나) 상원 재무위원장은 쇠고기 문제 해결이 한미 FTA 비준동의의 전제 조건임을 기회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치밀하게 표 계산을 하면서 한미 FTA 이행법안을 제출하는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9월 1차 시도를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으나 2008년 대선에서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 이후인 2009년 초에나 미 의회의 비준동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