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 동포단체인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중앙본부 매각 소동으로 일본 사회가 떠들썩하다. 정리회수기구가 제기한 거액의 대출금 반환 소송의 와중에서 심장부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던 이번 소동은 조총련 감시 기관인 공안조사청의 전 장관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등 드라마틱한 요소도 많았다.
●일본 뒤흔든 중앙본부 매각
현재까지는 조총련에게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로 실태가 드러난 후 검찰 수사가 시작돼, 결국 오가타 시게다케(緖方重威) 전 장관과의 매매 계약은 없었던 걸로 됐다. 18일에는 정리회수기구가 청구한 627억 엔의 전액 반환과 조총련 시설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인정한 1심 판결이 나왔다.
승소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소송 경비를 걱정한 조총련은 전격적으로 항소를 포기했고, 정리회수기구는 중앙본부에 대한 법원의 매매금지 가처분과 강제압류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 검찰이 당초 전자공정증서 원본의 부실기록 혐의를 사기 혐의로 변경해 오가타 전 장관을 체포하는 등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
지금은 절벽 끝으로 내몰린 조총련에 대해 일본 정부가 어떤 칼을 뽑아들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물론 조총련이 현재의 중앙본부를 잃는다 해도 하루 아침에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안조사청 관계자는 “일본 전국에 숨겨진 조총련 자산이 상당하기 때문에 버틸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대사관 역할을 해왔던 중앙본부가 경매로 팔려나가는 사태는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총련과 동포사회가 받고 있는 충격은 엄청나다.
이 같은 상황은 국내외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납치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는 둘도 없는 선물이다. 그는 조총련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다용도 카드를 손에 넣었다. 객관적으로 그가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부실채권의 회수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조총련을 죽이는 일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심복인 우루마 이와오(漆間巖) 경찰청 장관은 최근 “내 임기 중에 조총련을 부숴버리겠다”고 공언했다고 하니 진짜 호기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베 총리에게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납치문제가 걸려 있는 북일관계가 최대 장애물이다. 일본 정부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조총련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도 커다란 걱정이다. 이 때문에 그가 납치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조총련문제를 이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힘을 얻고 있다.
●아베 총리, 칼자루 쥐었지만
일본 정부의 조총련 대응은 표면적으로 법적인 토대 아래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바깥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조총련 문제는 역사의 피해자인 재일동포와 동북아시아 평화에 직결된 북한문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번 소동은 30여년 전 문세광 사건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해 흥미롭다. 당시 한국 정부는 조총련의 개입을 지적했지만, 일본 정부가 이를 부정하며 조총련을 보호해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었다. 지금의 조총련에게 그늘을 내준 어제의 일본은 없는 것이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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