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에 있는 세계 정상의 오페라 극장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130년 역사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 6월30일 이곳에서 개막했다. 개막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검고 긴 생머리의 여성 작곡가였다.
한국 작곡가 진은숙(46)의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가 성황리에 세계 초연됐다. 한국인의 작품이 이 극장에 오른 것은 1972년 윤이상 오페라 <심청> 이후 35년 만의 일. 더구나 현대 오페라가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청>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는 두 달 전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했을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2,0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2시간30분의 공연이 끝난 후 진은숙이 만든 선명하고도 활기찬 음악에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는 루이스 캐럴의 동명 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으로, 중국계 미국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대본을 쓰고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했다. 지휘는 이 극장의 음악감독 켄트 나가노가 맡았다. 이상한>
영어 대사에 독일어 자막이 곁들여졌다. “단순한 멜로디를 통해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쯤 되는 형태의 작품을 쓰고자 했다”는 진은숙은 복잡한 수수께끼 같은 스토리를 듣기 편하고 익살스러운 음악으로 풀어냈다. 타악기 사용이 특히 두드러졌다. 그는 이 오페라를 아들 리윤(6)에게 헌정했다.
연출은 정적이면서도 상징적이었다. 검정색 경사진 무대의 윗부분에서는 앨리스 역을 맡은 소프라노 샐리 매튜가 커다란 탈을 쓴 채 노래와 연기를 했다. 와이어에 매달려 하늘을 날거나 땅 속으로 사라지면서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70세의 전설적 소프라노 귀네스 존스는 얼굴에 흰 칠을 하고 하트의 여왕을 연기했다.
경사 아래에는 검정 의상을 입고 석고상처럼 분장한 가수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이들은 고양이, 쥐 등을 연기한 배우들 대신 노래를 불러 마치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연상시키는 이색적인 무대를 보여줬고, 노래를 하면서 흰 장갑을 끼고 인형극 같은 몸짓 연기도 함께 펼쳤다.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피아니스트 임수연씨는 “공연 전에 레드 카펫 행사가 열리고, 신문마다 작곡가의 인터뷰 기사가 크게 실리는 등 열기가 대단하다”면서 “한국인이 서양 음악의 중심에 침투해 흐름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극장이 발행하는 월간지 표지 역시 진은숙이 장식했으며, 앨리스를 테마로 한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진은숙은 공연을 마친 후 “유서 깊은 극장에서 작품이 초연돼서 기쁘다.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모두 너무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히고, “다만 상징적인 연출 때문에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한 달간 이어지는 페스티벌 기간 중 2차례 더 상연되고, 11월에도 4회 공연이 예정돼있다. 2008~2009 시즌에는 LA 오페라에도 진출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는 “한국 작곡가의 오페라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초연된 것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친숙한 소재만으로도 긴 생명력의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는 진은숙은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곡가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도 맡고 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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