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 갔다. 아쉬운 점이 여럿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언론에 나타난 국립묘지의 명칭 혼란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이를테면 올해도 ‘국립 서울 현충원 참배’와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가 뒤섞여 쓰였다.
국립 서울 현충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국립 현충원’은 1996년 ‘국립묘지관리소’라는 기관의 이름이 바뀐 결과이다. 이때의 ‘원’은 기관을 가리키는 ‘원(院)’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립 서울 현충원 참배’나 ‘국립 서울 현충원 안장’은 관리사무소 참배나 안장이라는 해괴한 말이 되고 만다.
■2005년 7월 국립묘지 설치ㆍ운영법의 제정으로 사정이 복잡해졌다. 이 법은 동작동 서울 국립묘지를 ‘국립 서울 현충원’, 대전 국립묘지를 ‘국립 대전 현충원’으로 각각 이름을 바꾼다고 명기했다.
이때의 현충원은 추모 공원이나 추모 동산을 가리키는 ‘원(園)’이거나 ‘원(苑)’이다. 법 규정대로 ‘국립 서울 현충원 참배’라고 쓰면 되는데, 왠지 언어감각에 거슬린다.
관리기구인 현충원이 이미 있는데도, 입법부가 전혀 다른 의미의 ‘현충원’을 쓴 때문이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관리기구의 이름은 ‘현충원 관리소’ 정도로 바꾸는 게 낫겠다.
■한자를 쓰지 않는 나날이 길어지면서 한자어에 대한 감각 자체가 흐려진 대표적인 예가 흔히 엉뚱한 뜻으로 잘못 쓰이는 ‘금도(襟度)’라는 말이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뜻하는 ‘금회(襟懷)’와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뜻하는 ‘도량(度量)’을 합친 말로 남의 허물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력, 관용을 가리킨다.
그런데도 거의 매일같이 신문과 방송은 ‘금도를 넘지 말라’거나 ‘금도를 지키라’는 말을 쓴다.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나 제약’이란 뜻으로 쓰는 모양이지만, ‘금도’라는 말에 그런 쓰임새가 있을 까닭이 없다.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와 혼동해서 ‘금제(禁制)’나 ‘금기(禁忌)’와 비슷한 뜻이라고 여겼거나, 어쩌면 줄이나 선을 가리키는 우리말 ‘금’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연상한 결과일 수 있다.
굳이 그런 뜻으로 쓰겠다면 한자를 바꾸어 ‘금도(禁度)’라는 말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한자어에는 그런 말이 없고, 되도록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면서 새 한자어를 만들 일도 아니다.
‘금도’의 오용이 둔해진 한자 감각이 빚은 단순 오류이기를 바란다. 어쩐지 한자어를 써야 멋스럽다는 비뚤어진 감각까지 겹쳤다면 더욱 한심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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