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긍 글ㆍ이철민 그림 / 나라말 발행ㆍ160쪽ㆍ9,000원 국어교사모임 고전시리즈 ‘절개높다~’
‘풍자’란 힘이 약하지만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센 자들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예술적 무기다.
그것이 잘 나타난 작품을 찾아보자면 우리의 판소리계 소설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고전을 쉽게 접하도록 펴내고 있는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의 열두번째 작품인 <절개높다 소리마오 벌거벗은 배비장> 은 하인과 기생에게 망신을 당하는 양반을 풍자하는 대표적인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 12마당을 정리한 신재효가 6마당을 다시 추리면서 <배비장전> 은 제외시켰을 정도로 그 풍자의 정도가 적나라하다. 배비장전> 절개높다>
작품 속 곳곳에서 풍자의 고갱이를 음미할 수 있다. 구대정남(九代貞男: 9대를 이어오며 아내 이외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남자)을 자부하던 배비장. 남들이 기생을 끼고 노는 것을 비웃던 그가 제주 기생 애랑을 본 뒤 상사병에 걸린다. 애를 태우던 끝에 애랑의 집 담장 밑 개구멍으로 숨어 들다가 살찐 몸이 턱 걸리고 만다.
곧 죽어도 양반이라고, ‘배가 불러 못들어간다’ 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문자를 써서 ‘포복불입(飽服不入)’을 부르짖는 모습이 우습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호색적이었던 양반들의 위선에 대한 신랄한 풍자도 풍자지만, ‘사면이 어둑어둑, 물결이 왈랑왈랑, 태산 같은 물마루가 우러렁 콸콸…’ 같은 판소리 특유의 입담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주로 부임하는 배비장이 ‘일편단심’ 이라고 한글 머리띠를 두르고 집을 떠나는 삽화나, 연속 동작으로 장면을 묘사한 만화적인 삽화는 고전이라면 기겁을 하는 아이들을 책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신관사또가 부임할 때 치러지던 신고식에 관한 정보를 방송 리포트식으로 전달한다든지 고전소설 속의 빛나는 조연들이나 세기의 요부에 관한 정보를 모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도 정성스럽다. 옛 고전읽기가 중요하니 던져주듯 ‘읽어내라’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도록 편집하는 일의 중요성이 새삼스럽다. 중ㆍ고생 대상.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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