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추모시설, 전쟁 박물관 등 일본에 산재한 전쟁 기념 시설에 대한 체계적 현지 조사가 국내 처음으로 이뤄진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올해부터 5년간 ‘일본 우경화 동향 관련 시설ㆍ기념물 조사사업’을 추진한다.
장세윤 연구위원은 “최근 심화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은 제국주의 시절 침략 행위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각종 시설을 통해 재생산되는 측면이 있다”며 “재단 연구원,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 사진가로 조사단을 꾸려 위치, 운영 방식 등에 대한 지속적 실태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은 홋카이도(北海島)-도호쿠(東北), 간토(關東), 간사이(關西), 주부(中部), 큐슈(九州), 오키나와(沖繩) 등 6개 권역으로 나눠 진행된다. 조사단은 기초자료 수집을 마무리하는 8월쯤 현지 조사에 착수하고 연말엔 보고서와 자료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29일 일본 내 전쟁 기념 시설 현황을 개략적으로 살피는 비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중부 지역
도쿄에 위치한 일본 우익 사상의 대표적 상징 야스쿠니 신사 경내엔 일본 최초의 군사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이 있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폐관됐다가 신사 측의 노력으로 1986년 문을 열었고, 대대적 보수공사를 거쳐 2002년 재개관했다.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한 이승희 박사는 이곳을 ‘군국주의 역사의 선전탑’이라고 규정했다.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소개하는 패널은 당시의 선전 영상, 군가와 함께 교묘히 배치돼 침략 전쟁을 ‘어쩔 수 없는 자위’로 오도한다는 것. 이씨는 “A급 전범을 비롯한 전쟁 주도자들의 근엄한 사진을 원형으로 늘어놓는 등 관람객의 애국심을 고양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이곳은 외부인 촬영을 엄격히 통제한다.
간토, 주부 지방 곳곳엔 메이지 유신 이래 전사자의 위패를 합사한 ‘호국신사’가 설치돼 있다. 주된 활동은 야스쿠니 신사와 연대해 애국심을 고취하고 전쟁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아이치(愛知)현에는 도조 히데키, 마츠이 이와네 등 A급 전범으로 사형 당한 7명의 유해를 합사한 ‘순국칠사묘’가 있다. 우익 인사들이 화장된 유골 중 일부를 회수해 숨겼다가 이후 유족의 허락과 재계의 지원을 받아 조성했다. 주변엔 수많은 전몰자 위령비가 세워져 우익단체의 제사가 이어지고 있다.
●서남 지역
2차 대전 전장이었던 오키나와,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ㆍ나와사키를 포함한 서남 지역은 평화 기념관 및 박물관이 집중된 곳이다. 히로시마 원폭 돔, 나가사키 평화공원, 오키나와 평화의 비석 등이 대표적 장소다.
중앙대 강사인 유지아 박사는 “이들 시설이 전쟁의 비참함, 초토화된 현장 등을 강조하면서 일본인에게 가해자 아닌 피해자 의식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역엔 미국의 오키나와 상륙에 맞섰던 군사 기지가 대거 사료관으로 꾸며졌다. 가고시마현 가노야(鹿屋)와 치란(知覽)에 있는 항공기지 사료관엔 소년병, 학도병을 포함한 특공대원들의 사진, 유품 및 유서가 전시돼 있다. 히로시마현 구레(吳)엔 1940년대 일본군 전력의 총아 ‘야마토 전함’을 소개하는 박물관이 2005년 개관됐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수상이 발기인 대표를 맡아 사업비를 모금했을 만큼 우익적 색채가 강한 시설이다. 유씨는 “이런 자료관은 반전 평화 의식 대신 과거 일본 군사력의 우수함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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