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에서 정부는 예상대로 미국의 노동 환경 등 7개 분야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대신 정부는 7개 분야에 우리 입장을 일부 반영시키고, ‘의약품 특허ㆍ허가연계 의무 이행 18개월 유예’를 이끌어내는 등 2개 분야에서 우리 요구를 관철시켰다.
■ 종합평가
외견상 우리 측은 7대 2의 불리한 협상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적어도 협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미국이 요구한 7개 분야는 미 민주당의 진보적인 노동ㆍ환경 기준을 FTA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아니었다. 또 몇몇 분야는 기존 협정문 내용을 명확히 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우리의 경우 특히 대표적인 피해 분야로 꼽히는 의약품에서 추가 양보를 얻어내 실질적으로 상당한 피해 감소 효과가 예상된다. 촉박한 협상 시한 등 때문에 7개 분야 이외 분야에서 우리의 역제안을 반영시킨다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던 당초 전망에 비춰보면 선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전문직 비자쿼터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성과를 내세우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전문직 비자쿼터는 미 의회가 결정권을 갖고 있어 행정부의 약속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또 실제 추가 협상 내용이 반영된 협정문이 공개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노동ㆍ환경
국제노동기구(ILO) 선언이 명시한 ‘결사의 자유’ 등 5개 권리와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등 7개 다자 환경협약의 의무 이행을 위해 국내 법령이나 관행, 조치를 채택ㆍ유지ㆍ집행하도록 했다.
미국의 요구대로 노동ㆍ환경 분야에서 FTA 협정 위반시 다른 분야처럼 일반 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기존 협정문과 달리 벌과금을 상대국이 가져갈 수 있고, 특혜관세 중단 등 무역보복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측 요구에 따라 한미 양국은 이 조치의 남용 방지 차원에서 일반 분쟁해결절차에 앞서 정부 간 협의를 하고, 노동ㆍ환경 협정문 위반이 무역ㆍ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등 요건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ILO 선언의 경우, 관련 8개 핵심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내용은 아니어서 양국 모두에 큰 부담은 되지 않을 전망이다.
■ 의약품
한미 양국은 FTA의 의약품 관련 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 협정과 공중보건 선언에 따른 공중보건 보호조치에 따른 행위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전염병이 창궐하면 특허에 구애받지 않고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우리 측 요구에 따라 복제약 시판허가와 특허연계 이행 의무를 협정 발효 후 18개월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특허-허가연계란, 특허기간 중 국내 제약사가 복제약을 제조해 의약품 허가당국에 시판허가를 신청할 경우, 의약품 허가당국이 이를 특허권자에 통보하고, 특허기간 안에 국내 제약사가 제조한 복제약이 출시되지 않도록 시판허가를 금지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특허권자의 특허분쟁 소송이 늘어나 특허기간 만료 이후에도 상당 기간 복제약 발매가 지연됨으로써 국내 제약업계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의약품의 지적재산권을 완화하는 쪽으로 미국의 통상정책 방향이 바뀜에 따라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서비스ㆍ투자 등
미 의회가 권한을 가진 전문직 비자쿼터 확대 문제와 관련, 우리 측은 추가 협상에서 미 행정부가 협조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문제는 본협상 과정에서 줄곧 요구한 사항이었지만 끝내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또 당사국이 ‘필수적 안보’예외조항을 주장할 경우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및 국가 대 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에서 이를 수용해야 하고, 양국의 항만활동 관련 조치 역시 필수적 안보에 해당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정부조달 참여 기업에 WTO 정부조달협정(GPA)에 따라 근본적인 노동권, 산업안전ㆍ보건, 근로시간, 최저임금과 관련해 수용 가능한 근로조건의 충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고, 미국은 외국인 투자자와 내국인 투자자가 동등한 수준의 투자 보호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선언적으로 담았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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