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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맺힌 반세기恨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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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맺힌 반세기恨 풀었다

입력
2007.06.2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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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생사조차 모른 채 헤어져 살던 가족이 경찰의 도움으로 극적 상봉했다. 힘겹게 살아왔던 지난 날의 기억보단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 50년만에 모자 상봉

“살아있었구나!” “예, 엄마….”

28일 서울 강동경찰서.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와 세파에 찌들대로 찌든 50대 남자가 손을 맞잡았다. 50여년 만에 만나는 모자(母子)였다. 어머니 이흥순(70)씨는 중풍을 심하게 앓는 환자였고, 아들 박모(52)씨는 절도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였다. 이들은 서로를 보는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내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끌어안고, 뺨을 어루만졌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박씨는 자신의 본명과 나이도 모른 채, 주민등록도 없이 살아온 무적자(無籍者)다. 호적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6, 7세 무렵 아버지가 빚더미에 오르면서 온 가족이 생이별을 했다. 고아원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물건을 훔쳤고 끊임없이 감옥을 들락거렸다. 교도소에서 지금까지 7개 자격증 시험에 붙었지만 허사였다. 주민등록이 안돼 있어 자격증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범죄의 악순환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박씨는 지난달 1,100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로 또 구속됐다.

박씨를 조사하던 강동서는 기구한 사연을 듣고 이를 딱히 여겨 '호적 만들어주기'에 나섰다.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애를 태우던 중 박씨 아버지가 6ㆍ25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보훈처로부터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했다. 없는 줄로만 알았던 박씨 호적 기록도 찾았지만 실제 성(姓)과 이름, 나이가 달랐다.

그 동안 식당과 공장 일을 전전하며 홀로 지냈다는 어머니 이씨는 경기 벽제 인근 교회의 신도 집에서 살고 있었고, 거동마저 불편한 상태였다.

박씨는 "죄값을 치른 후엔,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면서 경찰 측에 감사를 표했다.

▦ 60년만에 남매 상봉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헤어진 남매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재회했다. 60여년 만이었다. 누나는 중풍, 남동생은 언어장애로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말을 다하진 못했지만, '무언(無言)의 대화'로도 충분했다.

이들이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실시했던 사회보호시설 점검 덕분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 달 초부터 '실종아동 발견을 위한 보호시설 일제점검'을 벌이던 중 20일 서초구 양재동의 한 보호시설에서 지체장애인 김동식(74)씨를 만났다. 김씨는 1990년 입소 당시 뇌출혈 후유증으로 말을 못해 그저 '김씨'라고만 불렸었다. 99년 어렴풋이 말한 이름은 실제와 다른 '동신'이었고, 그 이름으로 호적을 새로 취득했다.

경찰은 김씨의 지문을 채취한 후 주민등록, 호적부 등을 조회한 끝에 누나 김연(78)씨가 춘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매의 상봉은 27일 춘천에서 이뤄졌다. 누나 김씨는 "3년 전에도 고향인 광주를 찾아 동생의 행방을 알아봤지만, 공사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 죽었단 말이 있어 포기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만나게 돼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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