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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원주민과 농사 짓는 박운서 전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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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원주민과 농사 짓는 박운서 전 차관

입력
2007.06.2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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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2월, 농사를 짓겠다며 표표히 필리핀으로 떠났던 박운서(67) 전 통상산업부 차관. 국내에 있었으면 조금은 편안하고 여유롭게 지냈을 터이지만 지난 2년 여 동안 그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남쪽 민도로란 섬에서 원주민들과 부대끼며 농사와 교육 선교활동에 몰두해왔다.

무더위와 싸우며 일에만 매달린 탓인지 60㎏ 이상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55㎏로 줄어들자 건강 검진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 23일 일시 귀국했다. 이틀에 걸친 정밀 진단 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1차 판정을 받고 28일 다시 현지로 떠났다.

-이제 어느 정도 농사일이 손에 익으셨는지요.

“한 마디로 나 편안하게 지내요. 주로 교회 짓는 일하고 농장 일하고 2가지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딱 2년 되니까 이제는 농장도 대충 정리가 됐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필리핀 원주민인 먕얀(mangyan)족을 위해 교회 짓는 일을 시작했어요.

두 개는 이미 완성해서 5월20일 헌당예배 드렸고, 8월5일 완공 목표로 또 한 군데(하윌리)에 짓고 있어요. 우리 농장이 전체 5만평인데, 그중 쌀 농사에 사용되는 땅이 4만5,000평 정도 되요. 첫 해에는 주로 경지 정리하고 투자를 많이 해서 적자가 났지요.

하지만 둘째 해인 작년 7월1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3,500가마니(한 가마니= 45㎏)를 생산했어요. 손해보지 않은만큼 배고픈 원주민들에게 밥을 먹여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고 있지요.”

-원주민들에게 개화사업, 시장교육을 시키고 계시군요.

처음엔 불쌍하니까 밥이고 신발이고 막 줬어요. 그런데 그게 그들을 돕는 길이 아니더라구요. 작년 7월1일부터는 두 가지 철칙을 제시했어요. ‘No work, No payment’(일하지 않으면 보수 없다), ‘No service, No reward’(서비스 없이 보상 없다). 이 두 가지를 무조건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신세지려는 사람은 하다못해 길 닦을 돌이라도 하나씩 들고 와요. 또 시간만 떼우면 무조건 일당 150페소를 주던 일당제를 성과급제로 바꿨어요. 그랬더니 65명이 사흘 걸리던 일을 20명이 이틀 만에 끝낼 정도로 생산성이 높아졌어요. ”

-지내시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요.

“솔직히 외로움이지요. 밤이면 정말 외롭습니다. 국내 방송에 나온 후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긴 하는데 도움은 하나도 안돼요. 매일 저녁에 집사람에게 전화하지요. 일반 전화는 없고 들고온 휴대폰만 소통할 수 있는데 그마저 터질 때도 있고 안 터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영어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외로움을 달래려구요. 우리 부부는 거길 영적 유배지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런데도 거기가 좋아요. 사실 처음에는 노후에 양평에다가 땅 500평 사놓고 30평짜리 집 짓고 좋아하는 골프 치면서 살려고 했지요.

그러다 목사인 집 사람이 동남아 골짜기 선교사 한 분을 몇 년 동안 돕고 있다면서 한번 가보자고 하더라구요. 가봤더니, 너무 열악해서 고생만 실컷 하다 왔지요. 부부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다만 하나 걸렸던 것은, 거기 애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었어요.

부모 잘못 만나 먹지도 못하고, 학교 구경도 못하고. 심지어 굶어죽고 하는 걸 직접 봤단 말이예요. 그 애들 눈빛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결국 필리핀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앞으로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회를 300개까지는 지으려고 합니다.”

-관료로, 기업인으로 40년 가까이 우리 경제의 치열한 현장을 지키셨는데 요즘 우리 경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 경제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성장을 멈춘 것 같아요. 지금 정부는 4% 성장대로 만족하는 거 같은데, 우린 아직 중진국이에요. 선진국이 되려면 적어도 6~7% 성장을 해야 합니다. 1970년에는 필리핀도 한국도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대였지요.

필리핀은 70년부터 정체돼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밖에 안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에게 뒤쳐진 것이지요. 우리 역시 이대로라면 다를 바 없습니다. 싱가폴 홍콩 등은 2만불, 2만5,000불로 갔는데, 우리만 사실상 1만 달러 대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도 필리핀이 그랬던 것처럼 말레이시아 태국에게 따라 잡히고 맙니다. ”

-노 대통령의 임기가 6개월 여 남았는데 여러 분야에서 뉴스의 중심입니다.

“현지에서 한국 TV를 위성으로 볼수 있도록 했고 인터넷도 가능해 한국의 주요 뉴스는 따라갑니다. 최근에 대통령이 헌재를 제소했는데 그것은 머리가 팔다리를 제소하는 꼴이예요.

‘언론도, 재벌도, 노동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내 백성이오’ 하는 차원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같이 더불어 살면서 발전하게 만드는 중간 키를 잡고 항로를 결정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요.”

-제2인생을 보람있게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 50~60대인 사람들은 개발시대 연배죠. 지금까지는 자기 가족과 조국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면, 퇴직 후에는 남을 위해 사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참 보람 있겠다 싶어요. 이제 우리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세한 일문 일답은 한국I닷컴을 참고바랍니다)

대담= 이종재 부국장 정리=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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