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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이 달래도 시원치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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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이 달래도 시원치 않은데

입력
2007.06.2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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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방송을 보면서 짜증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정말 종잡기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노 대통령 행보다.

노 대통령은 담화에서 국민연금법, 로스쿨 법, 정부조직법 등 이른바 민생ㆍ개혁 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국민의 이익보다 정략을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국민의 이익을 걱정한다는 노 대통령은 2일 임시국회 개회 이후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2일), 원광대 강연(8일), 6ㆍ10 항쟁 기념사(10일), 한겨레신문 인터뷰(14일)를 통해 원내 1당인 한나라당과 대선주자들을 깎아 내리고 조롱했다. 대선에서 우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도 했다.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선관위 결정에 사실상 불복하고 헌법소원까지 낸 것은 앞으로도 범 여권의 승리를 위해 대선에 열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당연히 국회를 포기한 줄 알았다. 한나라당은 안 그래도 정부 하는 일에 트집을 잡기위해 눈이 벌개져 있다. 트집 중엔 바른 것도 있고, 억지도 있다.

야당이란 그런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의원 시절 속했던 야당도 그랬다. 법안 연계투쟁도 물론 했다. 게다가 지금은 대선 국면이다. 야당이 정부가 생색낼 일에 순순히 협조할 리 없다. 달래고 타협해도 될똥말똥이다.

이런 마당에, 거꾸로 야당을 있는 대로 자극해 놓고 이제 와서 국민의 이익 들먹이며 야당을 윽박지르는 대통령의 모습은 뜬금없다. 정치를 떠나, 개인관계에서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청와대는 2005년 7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한 후 당시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을 한동안 자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9월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이런 덕담도 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이 아직 (한나라당을) 용서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를 정리하지 않을 수 있느냐. 지금 과거사 정리작업이 궤도에 들어섰으므로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한다."

상대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면 속내야 어떻든 이렇게라도 하는 게 보통이다. 노 대통령은 정말 대연정을 하고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판은 다 깨놓고, 무조건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이니 뻔한 정치공세로 폄하돼도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의 정치가 이런 수준이면 곤란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정치인의 정점'이라는 교과서적 위상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노 대통령은 대선 드라마에서 반(反) 한나라당 진영의 주연 못지않은 배역을 자임했다. 자신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임기 말 대통령을 도와줄 야당은 다른 나라에도 없다. 때문에 여론이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 여권이 사학법 재개정을 대폭 양보하지 않는 한 국회에서 노 대통령 뜻대로 법안이 통과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국회와의 협력보다 대선을 택한 노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노 대통령 담화는 아직도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착각, 자기가 한 일은 잊고 남은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억지의 결정판이다.

유성식 정치부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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