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덥지 콧물은 흐르지, 당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왜 유독 나에게만 단골손님으로 등장할까?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과 선풍기가 내게는 너무나 가까이 있고, 개에게는 없는 게 그 첫 번째 답이다.
특히 여름에는 콕사키, 노로, 일본뇌염 바이러스가 다른 계절보다 흔하다.
감기는 원인 바이러스가 호흡기 점막에 침투해 콧물, 기침, 오한, 체온 상승 등 전형적인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원인 바이러스는 라이노, 아데노, 인플루엔자 등이 주를 이룬다. 주로 환절기에 감기가 많이 걸리는 이유는 날씨가 건조해 점막이 마르면서 먼지나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고온다습한 여름에는 점막이 마를 일이 없어 감기에 잘 걸리지않는다. 그런데도 유독 여름 감기가 심하다면,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있거나 냉방병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
콕 집어 감기는 아니지만 열이 나거나 기침, 콧물 등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냉방병이다. 냉방병은 이름대로 냉방기구 사용이 원인이다. 실내와 외부의 온도차가 크면 자율신경계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조절반응에 이상이 생긴다.
더구나 밀폐된 공간에 오래 머물면 여러 가지 유해물질과 병원균에 오염돼 두통, 피로감, 어지러움 등 전신증상과 눈물, 기침, 콧물 등 점막 자극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는 자율신경계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바깥 바람을 쐬면 증상이 곧 나아진다.
냉방병을 일으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레지오넬라균이다. 앞서 말한 냉방병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고질적인 증상을 유발한다. 호텔, 백화점 등 대형 건물의 냉방설비용 냉각탑 수조에서 번식한 레지오넬라균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건물 전체로 퍼지면서 인체에 오염된다.
2~12일간 잠복기를 거쳐 고열, 오한, 기침, 근육통 등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증상이 급속히 악화하는 특성이 있어 의식장애, 심부전 등 다발성 장기 부전을 일으키며,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노인이나 심폐기능 이상자, 당뇨환자처럼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쉽게 증상이 나타난다. 냉방병으로 의심되는데 바깥 바람을 쐬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레지오넬라균 감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열병도 감기와 닮은 꼴이다. 콧물과 재채기는 하지만 고열(40도 전후)을 동반하지 않아 감기라고 하기도 뭣하고, 고열, 두통, 근육통이 2~5일간 지속하지 않아 독감으로 분류할 수도 없지만 고열이 5일 넘게 이어진다면 열병을 걱정해야 한다. 열병은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바로 병원을 찾아 원인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재호 강남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여름철 적절한 실내 온도는 24~26도이며, 습도는 60%를 유지하는 게 좋다”면서 “더위로 밤잠을 이루지 못해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술을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항력을 떨어뜨려 호흡기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의 감기 증상도 고민거리다. 건강보험공단의 2005년 자료를 보면 6월부터 8월까지 감기로 진료받은 만 5~7세 어린이는 15만~19만명으로 다른 계절의 절반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다.
성인과 원인과 증상에서 별다른 차이는 없지만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더 쉽게 감기에 걸린다. 일반적인 감기는 열을 내리거나 기침을 삭이면서 중이염, 인후염 등 부작용만 조심하면 자연 치유되지만 열이 나면서 손발에 물집이 생기는 수족구라면 신경계에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양현종 순천향대병원 소아과 교수는 “어린이들은 같은 반에 감기 환자가 있으면 쉽게 전염되지만 그렇다고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냐”며 “집에 돌아오면 손발을 깨끗이 닦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고 조언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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