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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실전강독] <중> 선거일 이후에 국민은 다시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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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논술 실전강독] <중> 선거일 이후에 국민은 다시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

입력
2007.06.2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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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제시문 (가) 홉스와 같이 로크도 자연 상태의 서술부터 시작한다. 초기에는 확실히 욕망의 억제를 가르친 자연법이 존재하는 평화 상태였지만, 인간이 화폐를 발명하고 재산을 축적하자 투쟁·강도·사기 등 나쁜 일이 생겨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치사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로크는 당시 자본의 창출과 축적에 계속 매진한 신흥시민계급의 입장에서 사회계약론을 전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로크는 국가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기관은 입법부이므로 만약 입법부와 행정부(국왕) 사이에 모순이 생긴다면, 입법부가 행정부에 우위 라고 했는데, 이는 의원내각제의 선구적 사상이다. 또한 그는 나쁜 정부나 입법부는 바꿀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의회해산제도로 발달했다.

제시문 (나) 영국 선거제도의 발달

논제 1> 제시문(가)의 내용으로 볼 때 바람직한 민주정치란 어떤 정치를 뜻하고 국내정치가 국제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술하시오.

논제 2> 제시문(나)를 볼 때 영국의 선거제도의 변화과정에서 1918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로 예상되는 것을 언급하고 선거권이 현저히 제한된다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논술하시오.

일반적으로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사람은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가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계약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루소이다. 홉스나 로크보다 약 1세기 늦게 태어난 루소에게 영국의 정치 상태는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문명 상태로 발전한 당시 프랑스 봉건사회를 점점 타락하고 있는 사회로 보았다. 루소는 농업과 야금을 대규모화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 생산하는 구조 안에서 인간불평등의 기원이 있다고 보았으며<인간불평등기원론, 1755> , 또 이것에 의해 인간은 자유를 잃게 되고 속박에 묶여 있다고 했다. <사회계약론, 1762> 법이나 제도 그리고 전제군주 등은 다수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이 모두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인민의 자유는 회복되지 않고 평등은 달성되지 않는다고 루소는 보았다. 당시의 프랑스는 엄격한 구제도(앙시앵 레짐)하에 있었기 때문에 폭력혁명으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사회계약론> 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과 공공의 자유와 이익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시민이 계약을 맺어 일반의지에 따라 정치사회를 확립하고 일반의지가 정한 법률에 의해 정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일반의지가 형성된 정치사회가 바람직한 정치라고 볼 수 있다. 홉스는 주권자를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집단으로 인식한데 비해, 루소는 주권자를 계약을 체결한 구성원 전체 관점에서 보았다. 로크는 입법부에 주권이 있다고 하였으나, 루소는 영국의회는 국왕과 상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원은 제한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며 “영국 국민은 선거 때만 자유롭고, 선거일 이후에는 노예상태에 있다”, “일반의지는 대표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영국 정치를 비판했다. 루소는 “일반의지는 대표되지 않는다”라는 인식에서 영국의회에서 제도적으로 사용하는 대의제를 비판하고 직접민주제를 옹호하게 됐다.

/김현석ㆍ통합논술 전문가ㆍ경기 수원 영통, 경북 영주 이듀스아카데미 대표

논제 1> 제시문(가)의 내용으로 볼 때 바람직한 민주정치란 어떤 정치를 뜻하고 국내정치가 국제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술하시오.

논제 2> 제시문(나)를 볼 때 영국의 선거제도의 변화과정에서 1918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로 예상되는 것을 언급하고 선거권이 현저히 제한된다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논술하시오.

일반적으로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사람은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가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계약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루소이다. 홉스나 로크보다 약 1세기 늦게 태어난 루소에게 영국의 정치 상태는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문명 상태로 발전한 당시 프랑스 봉건사회를 점점 타락하고 있는 사회로 보았다. 루소는 농업과 야금을 대규모화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 생산하는 구조 안에서 인간불평등의 기원이 있다고 보았으며<인간불평등기원론, 1755> , 또 이것에 의해 인간은 자유를 잃게 되고 속박에 묶여 있다고 했다. <사회계약론, 1762> 법이나 제도 그리고 전제군주 등은 다수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이 모두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인민의 자유는 회복되지 않고 평등은 달성되지 않는다고 루소는 보았다. 당시의 프랑스는 엄격한 구제도(앙시앵 레짐)하에 있었기 때문에 폭력혁명으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사회계약론> 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과 공공의 자유와 이익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시민이 계약을 맺어 일반의지에 따라 정치사회를 확립하고 일반의지가 정한 법률에 의해 정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일반의지가 형성된 정치사회가 바람직한 정치라고 볼 수 있다. 홉스는 주권자를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집단으로 인식한데 비해, 루소는 주권자를 계약을 체결한 구성원 전체 관점에서 보았다. 로크는 입법부에 주권이 있다고 하였으나, 루소는 영국의회는 국왕과 상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원은 제한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며 “영국 국민은 선거 때만 자유롭고, 선거일 이후에는 노예상태에 있다”, “일반의지는 대표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영국 정치를 비판했다. 루소는 “일반의지는 대표되지 않는다”라는 인식에서 영국의회에서 제도적으로 사용하는 대의제를 비판하고 직접민주제를 옹호하게 됐다.

/김현석徽淪瀾茨?전문가ㆍ경기 수원 영통, 경북 영주 이듀스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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