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창작과비평> 57호에서 박현채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하 국독자론)과 이대근의 주변부자본주의론(주자론)이 충돌했다. 창작과비평>
“자기 나라의 성격을 해명하려 수많은 활동가, 연구자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열성적으로 논의에 참여”(조현연)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의 서막이었다.
주자론이 패퇴하고 식민지반봉건론(식반론)이 국독자론과 맞서는 상황에서 87년 5월 스물네살 대학원생 이진경은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 <사사방> ㆍ아침 발행)을 들고 논쟁에 가세했다. 사사방> 사회구성체론과>
“번역서가 아니라 수입 이론을 소화해 사구체에 대한 본격적 이론을 전개한 최초의 국내 저술”(정성기)을 통해 이진경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입장에서 민족해방투쟁(NL) 측의 식반론은 물론, 같은 민중민주변혁(PD) 계열의 수장격인 박현채의 이론까지 논파했다.
쟁점은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구성체에 속하는가 였다. ‘social formation’의 번역어인 사회구성체는 한 사회를 생산관계인 토대와 그에 상응하는 상부구조의 유기적 통일체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적 개념이다.
식반론 이론가들은 “일제 식민지였던 조선은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지주제가 토대, 식민지 국가권력이 상부구조를 이루는 특수한 사회구성체”라고 주장했다.
이진경은 조소했다. “군사적 측면 등에서 미국의 영향이 강하니까 식민지라고 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60년대 이후 이촌향도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동자인 상황을 봉건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타 이론들을 ‘주관주의’ ‘관념론’으로 치부하며 <사사방> 의 저자는 한국사회가 명백히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 속한다고 단언했다. 봉건사회의 잔재들조차 자본주의적 보편이 특수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사방>
20년이 흐른 지금 이진경은 당시에 쓴 문장들이 멋쩍다. “자본주의의 보편성, 역사법칙 등 마르크스-레닌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어디서나 동일하게 관철되는 사회발전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논쟁은 국독자론 우위의 NL-PD 논쟁으로 한층 정교해졌고, <사사방> 은 85년부터 본격 출판되기 시작한 좌파 이론서들과 더불어 대학가, 노동운동 현장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사사방>
윤소영, 서관모 등과 잡지 <현실과 과학> 을 창간해 혁명의 이론적 문제들을 개진하는 한편으로 이진경은 비합법 잡지 <노동계급> 을 통해 전국에 분산된 혁명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모색했다. 정작 여러 혁명 단체의 인사들과 접촉하게 된 것은 감방 안이었지만. 노동계급> 현실과>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는 죄목으로 징역을 살던 90, 91년 소련이 무너졌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를 성서로 여겨왔던 젊은 혁명가에게 책 제목은 질문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무엇을>
감옥에서, 출옥 후 꾸린 세미나에서 알튀세르, 푸코, 라캉, 프로이트, 데리다, 소쉬르, 야콥슨, 심지어 셰익스피어까지 온갖 분야의 책을 읽었다. “사회주의가 망한 이상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혁명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운동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던 시기였다.”
<사사방> 에서 “개념의 공동묘지 속에서 무당들이 불러낸 망령들의 집합”으로 깎아 내렸던 알튀세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회주의 붕괴 훨씬 이전부터 마르크시즘의 위기를 인식했던 이 프랑스 사상가의 논의에서 “마르크시즘의 도식적 이해를 거부하되 그 본령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창조적 탈주선을 그리려는 시도”가 감지됐다. 하지만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적극 받아들인 그의 사상엔 혁명적 사유가 허약했다. 사사방>
이런 상황에서 만난 푸코와 들뢰즈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 를 통해 처음 접한 푸코의 이론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극복했음에도 사회주의가 왜 몰락했나”에 대한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줬다. 시칠리아의>
문제는 ‘근대성’이었다. 지배자도 신분도 없는 근대사회의 지배ㆍ통제 메커니즘을 다각도로 폭로하는 푸코의 저작을 통해 이진경은 “자본주의를 넘어선다고 해서 근대성이 자동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와 근대성을 동시에 뛰어넘는 이중 혁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들뢰즈에게 배운 것은 자본주의 및 근대를 ‘외부를 통해 사유’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체제를 자폐적이고 완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체제 외적인 것을 끊임없이 포획해 내부화하려는 체제 작동 방식에서 ‘탈주’해 끊임없이 외부를 창조하는 실천을 말한다.
93년 <안티 오이디푸스> 를 읽으며 “혁명을 근본에서 사유하려는 열정에 감동받”은 이진경은 이후 10년간 들뢰즈를 천착한다. 그가 2002년 말에 내놓은 <노마디즘> 은 들뢰즈가 가타리와 함께 쓴 <천의 고원> 의 해설서이자 “10년의 도제수업이 끝났다는 자기선언”이다. 천의> 노마디즘> 안티>
“어느 한 사람의 이론에 기대거나 주석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라는 지점에서 새롭게 사유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전히 혁명에 대한 꿈을 갖고 산다”는 이진경은 지금 ‘코뮨주의자’다. 멸망한 사회주의를 일컫는 ‘코뮤니즘’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기획했던 근대 및 자본주의 전복의 표상인 코뮨(commune)을 추구하는 것이 코뮨주의다.
“국경과 민족이라는 동일성을 횡단하고 해체하는 소수자들의 탈근대적 삶의 공간”이자 “생산관계뿐 아니라 근대적 습속에 젖은 삶의 방식까지 바꾸려는 노력”으로 코뮨을 설명하는 그에게 자급자족적 생활공동체이자 학문공동체인 ‘수유+너머’는 바로 그 실천의 장이다. 혁명은 불온한 것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한다.
“이전의 혁명은 권력의 장악과 연계됐기 때문에 혁명성은 지배계급을 긴장시키는 불온성과 같이 갈 수 있었다. 이젠 불온성이 혁명의 척도가 될 수 없다. 혁명은 신나고 즐거운 것이다.”
● 이진경 약력
1963년 서울 출생(본명 박태호)
1987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사회학 석사
1998년 서울대 사회학 박사
2003년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현)
저서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 <철학의 외부> <노마디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미-래의> 자본을> 노마디즘> 철학의> 필로시네마,> 근대적> 수학의> 근대적> 맑스주의와> 철학과>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 이진경의 '생명의 정치경제학'
이진경의 최근 관심사는 생명이다. <미-래의 맑스주의> (2006)에서 그는 생명체를 분할 불가능한 ‘개체’가 아니라 분할 가능한 요소들의 집합체인 ‘중-생’(衆-生)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세포막, 세포질, RNAㆍDNA 등 수많은 요소로 구성된 세포에서부터 토양, 대기, 바닷물, 미생물, 식물 등의 거대한 순환계인 지구까지 생명체는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그는 생명체를 생물과 동일시하는 관념을 “생물을 위해서는 생명 없는 사물들은 어떻게 이용해도 좋다는 식”의 인간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그는 무생물이라도 다른 중-생들과 순환계를 구성, 유지할 수 있다면 생명으로 봐야 하며, 그런 관점 속에서 “기계와 자연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는 ‘순환의 이득’을 중시한다. 생명체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제공하는 ‘증여’를 통해 순환계를 구성한다. 증여는 등가적 교환과 구별되는 것으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는 관계다.
식물과 동물이 각각 산소와 거름을 내놓을 때 그것은 ‘한 번의 교환’이 아니라 ‘두 번의 증여’다. 순환의 이득은 제로섬이 아니라 과잉ㆍ중복되기 마련이며, 이런 잉여는 순환계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렇게 정초한 생명관 위에 이진경은 ‘생명의 정치경제학’을 전개한다. 그는 28일 ‘맑스코뮤날레’ 주제발표 세션에서 생명체가 발생시키는 순환의 이득을 ‘잉여가치’로 변환하려는 자본의 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혈액, 정자, 난자뿐 아니라 특정인의 몸에 있는 항체, 모세포가 값비싼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실은 “생명산업이란 생명력의 해체를 생산과 착취의 일반적 방법으로 사용하는 죽음산업”임을 방증한다.
특히 생명복제는 “유기체의 신체 구성 능력을 기계적으로 통제ㆍ조작해 순환계의 고리 자체를 끊고 잉여가치를 가공, 착취하는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고 그는 경고한다.
이진경은 자본에 의해 생명이 착취당하는 지점과, 생명과 자본이 충돌하고 대결하는 지점에서 각각 생명의 경제학과 정치학이 사유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발표에서 “생명의 권리가 아닌 생명에 대한 자본의 권리를 배타적으로 보증”하는 생명특허에 대한 투쟁을 제안한다.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의 특허권을 인정하고, 항체에 대한 권리를 당사자가 아닌 기업에 제공하는 상황을 문제 삼으며 “생명력을 착취당하는 생물뿐 아니라 그로 인해 순환의 이득을 상실하게 된 인간 자신을 위해서도 투쟁이 긴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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