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이 끝났다. 바칼로레아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이다. 대학이 평준화한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으면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가운데서도 최고 엘리트 대학으로 알려진 그랑제꼴에 들어가려면 바칼로레아를 붙고도 다시 2년간의 예비학교를 다녀서 그 대학의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때 그랑제꼴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은 일반 대학에 3학년으로 입학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우수한 학생들이 뛰어난 영역에 도전을 하느라 땀 흘린 시간이 낭비되지 않고 그만큼의 가치로 평가받는 합리성이 있다.
● 객관식이면서 채점은 오래 걸려
프랑스 입시의 합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칼로레아 시험이 주관식이라는 데 있다. 한국의 수능시험은 객관식이다. 객관식으로 사고하는 것과 주관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학문 연마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더 놀라운 차이는 채점기간이다. 바칼로레아는 주관식인데도 2주일이면 채점이 끝난다. 반면 한국에서는 컴퓨터가 채점하는 객관식 수능시험을 한 달 정도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답안지를 반드시 컴퓨터 전용 수성펜만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도 컴퓨터용 카드를 쓰는 객관식 시험을 활용하지만 연필로 표기할 수 있다. 연필을 쓰면 언제든지 마음 놓고 고칠 수 있다.
수험생들이 표기가 잘못 될까 신경 쓰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염려가 없다. 한국이 쓰는 채점기는 분명 연필로 표기해도 판독을 한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나라는 수정이 힘든 수성펜만을 고집한다.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 그토록 싫은 것인가.
더 이상한 것은 올해 입시부터 도입하기로 한 수능 등급제이다. 수능은 그 동안 그냥 점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과목과 쉬운 과목 간의 편차를 감안하여 정교하게 계산한 표준점수제를 적용했다. 표준점수제가 학생 간의 실력차이를 정확하게 측정해 준다. 그런데 이 표준점수제를 버리고 수능점수도 9개로 등급을 나누기로 했다.
수능등급제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불과 1점 차이로 1등급에 들지 못한 사람은 1점을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4% 영역에서 11%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대학마다 과목마다 다르지만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밀려나면 최고 8점까지도 손해를 본다.
명문대 합격에서 불과 몇 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감안하면 수능등급제는 매우 불합리한 제도이다. 수능시험의 정확도를 흐려버림으로써 내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실력보다 운이 좌우하는 시험으로 만들 수 있다.
● 억울한 피해자 만들 수능등급제
논술이라는 제도도 문제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면 논술 만큼 좋은 제도가 없다. 학생들이 진정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은 전혀 이렇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대학입학 논술만 느닷없이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명문대에 보내려면 학교 밖에서 논술과외를 받으라고 학부모들한테 노골적으로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외부에서 소문난 논술강사들은 모두 대학에서 인문학을 석사 이상 공부한 학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고등학교 교단에 설 길이 막혔다. 대학강사라도 그렇다.
논술이란 근본적으로 철학과 논리학 강좌에서 출발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이것을 가르칠 만한 과목이 굳이 있다면 윤리겠지만 모두가 배우지 않는다.
더구나 이 과목은 고답적인 도덕률을 암기하도록 가르치다 보니 스스로 사고하는 법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등학교 논술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철학강좌를 필수화하고 우선 대학강사에게라도 교사가 될 길을 열어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교육부와 대학이 내신 점유율 시비에 앞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부터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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