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발레다. 최근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열린 2007뉴욕인터내셔널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무용수 여섯 명이 한꺼번에 입상했다. 특히 여자부는 금, 은, 동상을 휩쓸었다.
금상을 차지한 하은지는 계단에서 굴러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지만, 수술과 재활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더욱 돋보였다. 이렇듯 좋은 성적을 올리기까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는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치하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도 현재 피아노, 바이올린 등에서 3명이 결선에 진출해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이번 뉴욕발레콩쿠르처럼 한국의 무용수, 성악가, 연주자들이 한 대회에서 무더기로 입상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한국인끼리 결선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한국인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날까. "그렇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은 것을 보면, 실력에 관한 한 뒤질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사무엘 윤의 인터뷰를 되새기면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독일 전역의 극장에 한국인 성악가가 소속돼 있다. 그만큼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가 많고 유학생도 많다.
그렇지만 현지에서는 한국 성악가는 눈이 짧아 크게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해, 유학을 오자 마자 콩쿠르에 나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콩쿠르 출전이 목표인 것 같은 성악가도 많다고 한다.
한 무용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한국 무용수의 기량이 크게 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서유럽 등 잘 사는 나라에서는 발레 하는 학생이 줄고 있다. 웬만큼 잘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뛰어난 무용수가 외국 발레단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해 국제 대회에 출전 시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제 콩쿠르에는 여러 가지 계산과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무용수, 성악가, 연주자들은 대회 출전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그리고 너무 자주 입상한다. 물론 그 자체를 탓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 콩쿠르에 대한 집착이 서열주의와 닿아있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있다.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면 어렵지 않게 고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입상 경력을 줄줄이 나열한 연주자 소개 팸플릿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입상 경력이 있으면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데 유리하다는 사람도 있다.
민족주의 정서와도 통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인정 받았다는 식이다. 거기에는 언론 보도도 한몫 한다. 콩쿠르의 성격, 위상, 규모, 참가자의 면면 등을 고려하기 보다는 1등을 했다거나, 무더기로 입상했다거나 하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엄밀히 말하면 콩쿠르 입상은 출발일 뿐이다. 프로 세계에 비교적 잘 진입했다는 것이지, 그것이 실력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느 대회에서 입상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무대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박광희ㆍ문화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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