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33)씨는 얼마 전 김장을 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김치를 담그는 김장이 아니다. 와인 행사(40~50%)에 맞춰 와인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와인 김장'을 가리킨다.
그는 "평소에 적어둔 와인리스트의 와인을 가장 싸게 파는 행사를 찾아가 몇 박스씩 산다"며 "라벨이나 상표가 훼손된 게 많지만 제돈 주고 사면 워낙 고가라 엄두가 안 나 김장을 한다"고 했다. 와인 김장은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알뜰한 구매 비법으로 통한다.
#와인 동호회 회원 윤모(31ㆍ여)씨는 휴가철을 맞아 '와인 원정'을 계획중이다.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가 와인을 사오면 항공료를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는 "일본은 국내 와인가격의 절반 수준이라 샤또무통로칠드(국내 45만~200만원대) 같은 고급와인을 사면 와인수집도 하고 여행도 하고 경비도 아낄 수 있어 일석삼조"라고 귀띔했다.
'와인 김장''와인 원정'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국내 와인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 와인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며 대중화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정작 가격은 내릴 줄을 모르고 있다.
특히 대중와인으로 자리잡은 칠레와인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도 낮아졌지만 소비자가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가끔 벌이는 와인 대방출 행사에 최대 90%까지 할인되는 와인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와인 값에 거품이 많다는 방증이다. 특히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국내 와인가격은 최대 3배 가까이 비싸다. 일본이 와인 원정의 목적지로 각광 받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내 와인값은 왜 비싼 것일까. 업계에선 ▦높은 세금과 ▦복잡한 유통구조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본은 병 당 일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지만 우리나라는 수입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주세율 30%) 체계다. 원가가 비쌀수록 우리나라는 세금이 함께 늘어나 일본과 와인값 차이가 점점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관세(15%) 교육세(10%) 부가가치세(10%) 등을 합치면 최종세율은 무려 68%에 달한다. 그 결과 프랑스산 '깔롱 세귀'(현지 4만5,000원)는 일본에선 5만3,000원, 한국에선 12만원에 팔리고 있다.
여러 갈래로 찢긴 유통구조도 와인 값을 부풀린다. 수입상(마진 30%) 도매상(마진 15%) 소매상(마진 35%) 면허가 각기 따로 구별돼 각 단계에서 챙기는 마진도 그만큼 늘어난다.
'몬테스 알파 멜롯'(칠레)이 할인점에선 2만9,900원, 백화점에선 3만8,000원, 와인바에선 6만8,000원에 팔리는 이유도 다단계식 유통구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수입상이 직수입해 판매하는 곳(에노테카)도 있다. 때문에 와인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는 원가 만원짜리 와인을 숍에선 5배, 호텔에선 10배 가격에 사 마시고 있는 셈"이라며 "일본처럼 종량세를 도입하고 유통구조를 간소화하면 값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값비싼 국내 와인가격으로 인해 해외 와인 원정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와인을 불법으로 대량 반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모든 주류는 1병(1l, 400불 이하)만 면세(나머지는 68%관세)지만 수하물 가방에 꼭꼭 숨겨 넣어 몰래 들여온다는 것. 심지어 인터넷엔 '와인 들키지 않고 포장하는 법'끼지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