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불법 대출로 손실을 입은 은행들이 "현대그룹과의 거래 관계에 차질이 빚어질까 두려워" 소송을 포기하자, 예금보험공사가 이들 은행을 대신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섰다. 부실 책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예금보험공사 부실채무기업 특별조사단은 1998~99년 당시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가 금융기관에 초래한 손실에 대해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상속인인 현정은 회장 및 당시 임직원들을 상대로 7월 중 직접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이번 소송에는 현 회장 외에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 등 현대건설 전직 임원 7명이 포함된다.
예보가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한 부실 기업주 등에 대해 직접 손배소를 제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해당 금융기관이 예보의 소송 제기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예보가 대신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예금자보호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예보의 부실 책임 조사결과 고 정몽헌 회장 등 현대건설 전직 임원 8명은 98년 분식 재무제표를 이용해 옛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등 7개 금융기관에서 불법 대출을 받은 뒤 이를 갚지 않아 276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또 하이닉스반도체 전직 임원 4명은 99년 분식 재무제표를 이용해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받아 15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예보 관계자는 "지난 3월 신한은행과 SC제일은행 등 해당 채권금융기관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요구했으나 이달 15일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이들 금융기관을 대신해 직접 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당시 대출의 경우 출자전환 등을 통해 이미 손해를 회복했기 때문에 소송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데다 현대그룹과의 거래 위축 등을 우려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 역시 "15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현대그룹과의 거래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측은 "현 회장은 당시 직접 경영상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며 현재도 정몽헌 회장의 개인 부채를 갚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채권단에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하지 않았는데, 예보가 왜 무리하게 소송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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