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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머리카락에서 미래신약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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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머리카락에서 미래신약 캔다

입력
2007.06.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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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는 머리카락 속에 묻힌 신약을 캐는 연구자들이 있다. 생체대사연구센터(센터장 정봉철)의 최만호 박사팀이 그들이다.

일반적으로 신약개발 연구자들이 환자의 혈액이나 조직 등을 시료로 삼아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타깃 단백질을 찾아내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머리카락에 매달린다. 혈액이나 조직은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얻을 수 있지만 머리카락은 그저 가위로 싹둑 잘라내면 그만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피를 뽑지 않고도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 머리카락 속에 무엇이 있길래?

연구팀은 머리카락 속에서 혈액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은 체내 대사산물(대사체)을 찾아낸다. 흔히 병원에서 피를 뽑으면 혈액 내에 콜레스테롤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암세포에서만 나오는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지, 호르몬 수치는 정상인지 등을 검사할 수 있다.

세포가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온갖 화학반응에서는 대사체(호르몬 항체 지방산 아미노산 등)라는 산물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곧 건강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머리카락에도 이러한 대사체들이 똑같이 들어있다. 머리카락 자체는 죽어있는 세포지만 모세혈관을 통해 체내를 도는 이러한 분자들이 모근까지 도달했다가 자라는 머리카락에 달라붙게 된다.

물론 혈액이나 소변 등에서 검출되는 양보다 기껏해야 수백분의 1, 적게는 수만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극미량이다. 농도로 따져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100만분의 1(ppm) 수준이 아니라 10억분의 1(ppb)이나 1조분의 1(ppt) 수준이다.

연구팀이 머리카락에서 이러한 대사체를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한 지는 벌써 10년 전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나간 것이다.

■ 탈모의 새로운 원인 찾아내

연구팀은 머리카락 분석 기술을 통해 가장 먼저 탈모 예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 박사는 KIST 내의 대머리 연구원, 또는 배우자나 가족 중 대머리가 있는 연구원을 일일이 찾아 19명으로부터 금쪽 같은 머리카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그들의 8~16세 아들 16명으로부터 역시 머리카락을 얻었다. 여기서 머리카락과 관련한 호르몬과 그 산물을 분석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탈모의 원인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대사 산물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으로 알려져 있다. DHT가 모근을 위축시켜 머리카락이 쉽게 빠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판되는 탈모 치료제는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변화하는 효소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런데 정 박사와 최 박사의 분석 결과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다. 탈모와 정상인 사이에 테스토스테론과 DHT 양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 반면 에피테스토스테론이라는 다른 호르몬의 양이 훨씬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연구팀은 탈모의 또 다른 원인이 에피테스토스테론이라는 결론을 얻어냈고, 이러한 주장을 <연구 피부학 저널(the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 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에피테스토스테론의 대사 산물인 EDHT는 DHT와는 반대로 탈모를 방지하는 것으로 추정, 이를 촉진하는 신약 물질을 찾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아직 탈모가 진행되지 않은 어린 아들들도 아버지와 비슷한 호르몬 양상을 보여 대머리가 될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널의 편집자는 “피부과 의사, 당신 아들의 머리카락을 검사한다”는 제목으로 이 논문을 소개하는 해설을 싣기도 했다.

■ 머리카락으로 혈액검사 대체할지도

머리카락 검사는 가까운 미래에 혈액 검사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 단적인 예로 연구팀은 머리카락으로 콜레스테롤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아산병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머리카락 속 콜레스테롤 수치를 측정한 결과 혈액 검사와 정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시료를 얻기 쉽다는 점 외에 머리카락 검사의 또 다른 장점은 혈액 검사로는 불가능한 과거의 건강 정보를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정 박사는 “한 달에 평균 1㎝가 자라는 머리카락은 길이에 따라 과거 수개월~수년 사이의 콜레스테롤 추이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피를 뽑은 적이 없어도 건강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건강 기록부’를 하나씩 갖고 있는 셈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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