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5일 "범여권이 하나로 뭉치는데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며 범여권 대통합 참여를 선언했다. "툰드라 동토에서 새 정치 질서를 만들겠다", "범여권도 한나라당도 아닌 제3 지대에서 새 판을 짜겠다" 고 말하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한 지 3개월 만에 범여권 둥지에 들어감으로써 현실과 타협한 셈이다.
손 전 전 지사는 이날 선언으로 단박에 범여권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김부겸 정봉주 안영근 조정식 의원 등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의원 7명이 마침 이날 손 전 지사 지지 선언을 함으로써 원내 세력 확보 작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김 의원 등은 특보단으로 활동하며 대선 기획과 지지 의원 규합 역할을 하게 된다. 손 전 지사측은 "최소 10명의 의원이 커밍아웃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아침 캠프 회의에서 "불쏘시개가 되든 뭐가 되든 대의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며 참모들에게 범여권 합류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어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범여권 대선주자 연석회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손 전 지사는 그간 '통합 첫 단계부터 발을 들여놓고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냐', '독자 세력기반을 확실히 다지며 기다릴 것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한 측근은 "통합의 기폭제가 돼 달라는 범여권 의원들의 거센 압박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통합 논의가 진척되는 것을 방관만 하다가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고, '무임 승차론' 같은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비(非) 정치권의 시민사회세력을 먼저 규합한 뒤 정치권 인사를 흡수한다는 당초 계획도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손 전 지사는 이날 여의도 한 호텔에서 김 전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면 자질구레한 것 눈치 보지 말고 꿋꿋하게 가자"며 "대통합을 이뤄 국민이 하나가 되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기초가 되도록 뒷받침하는 게 대의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좀스럽게 시비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뚜벅뚜벅 힘차게 나아가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냉혹한 현실이 손 전 지사 앞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범여권은 그간 흥행을 위해 손 전 지사에게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지만,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
상당수의 범여권 의원들이 "탈당 꼬리표가 붙은 손 전 지사는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며 그의 본선 경쟁력을 혹평하는 게 현실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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