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바탕 위로 하얗게 드러난 십자가. 비닐로 몸을 칭칭 감고 눈을 가린 여자가 두 팔을 벌린 채 누워 있다. 십자가 위의 여자라는 도상이 도발적인데다 흑과 백, 빨강의 강렬한 색상 대비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스페인 출신 젊은 여성 작가 히모 리사나(31)의 것이다. 온 몸을 비닐 붕대로 감은 채 십자가에 달린 여자는 여성 억압에 대한 직설적인 항변이다.
그런데 그 여인의 몸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색채와 형태가 몹시 탐미적이다. 또 다른 작품 <깨진 꿈> 에서, 입술 양 옆으로 얼굴을 따라 길게 새빨간 피를 흘리는 여자의 얼굴은 끔찍하면서도 고혹적이다. 정치적 메시지와 형식적 아름다움은 그를 만나 균형을 이룬다. 깨진>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다음달 9일까지 열린다. 디지털 기술로 인화한 사진 이미지 속에서, 그의 여인들은 금속성 광택의 매끄럽고 차가운 느낌으로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정밀한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기계 장치의 일부 같은 이미지들 속으로 꿈속인 양 섞여 든 여인의 하얀 얼굴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02)720-5789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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