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 향연폐허의 인간, 그 精神史 "한 시대의 확인과 해체"
시인 고은(74)이 <1950년대>를 ‘세대’ 지에 연재한 것은 1971년이다. “지금 나는 그것을 증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 같다. 한 시대가 이룬 역사가 그저 쓸모없게 명멸할 뿐 아주 의미를 잃으려 하는 위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1950년대의 모든 허망과 무의미를 확인함으로써 그 시대를 토인비적 역사법칙보다도, 어떤 법칙보다도 빨리 침몰시켜버리고 싶은 자기해체를 위해서인 것이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이 책은 “1950년대의 마지막 고아”를 자처한 고은이 기록한 당시의 한국 문단사다. 하지만 그것은 한 시대 ‘문단적 활극’의 재현을 넘어 전쟁과 인간과 역사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쟁의 초토가 낳은 사생아들의 ‘정열과 광태와 퇴폐’를 통해 묻는 처절한 기록이 되고 있다.
6ㆍ25가 만든 폐허, 살아남은 인간들의 숨결 그 자체가 됐던 허무,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들의 운명이 되고 있는 ‘공동의 정신사’에 관한 고백이다. 고은은 박람강기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한, 주술적이다 싶을 만큼 도도하고 직관적인 서술로 그 시대를 기억에서 불러낸다. “1950년대, 그것은 죽여버리고 싶은 애인이다.”
고은은 대략 <1950년대>를 쓰던 시기를 기점으로 허무적ㆍ탐미적 시 세계에서 현실참여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는 1980년대말의 한 강연에서 “폐허의 벽돌 조각과 잿더미의 잡초 우거진 곳에서 십대 후반의 나는 과거와 미래가 이어질 수 없는 현재의 단절이 낳은 시대의 고아에 불과했습니다. 그 일인칭의 고아가 삼인칭의 무한한 만인의 세계를 꿈꾸게 된 사실이 바로 <만인보> 의 시 세계인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만인보>
하종오기자 jp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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