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경기 고양시 모 육군부대에서 하마터면 인명 참사로 이어질 뻔한 수류탄 사고가 있었다. 이날 오후 4시께 신병훈련장 참호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정모(20) 훈련병이 실수로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손에서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위기일발의 순간, 참호 속에 같이 있던 교관 박모 중사가 떨어진 수류탄을 참호와 배수로 형태로 지하에 연결된 ‘수류탄 처리공(空)’ 입구에 발로 차넣었다. 수류탄은 직경 30㎝ 정도의 관을 타고 내려가 약 2초 후 지하에서 폭발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멀찍이 뒤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상황을 지켜보던 200여 명의 다른 훈련병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입대 3주를 조금 넘긴 정 훈련병은 당시 “진짜 수류탄을 처음 던지다 보니 너무 긴장했고 안전핀을 제거하고 던지려는 순간 힘이 빠져 손 뒤로 수류탄을 흘렸다”고 말했다. 교관의 기지로 참사를 모면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까지 됐다.
며칠 뒤 가수 이용(50)씨는 훈련 교관에게 성금으로 1,000만원을 전달했다. 미국 시민권자로 군악대에 자원 입대한 아들이 마침 그때 육군에서 훈련을 받고 있어 이씨는 “내 아들을 살린 것 같이 고마워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포상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두 달이 채 못 되는 5월 18일. 무사히 훈련을 끝낸 정 훈련병이 자신이 훈련 받은 바로 그 부대에 소총수로 배치된 지 한 달 되는 날이었다. 정 이병은 이날 오전 부대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 중 K-2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에 따르면 정 이병은 표적을 향해 2발을 쏜 뒤 3발째를 자신을 향해 쏘았다. 다음 날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숨진 오모 중위와 총상이 비슷했다.
육군은 바로 조사에 나섰지만 유서나 개인기록이 없어 이렇다 할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심리검사 등을 통해 군 생활 부적응 소지가 있는 병사는 입영 때부터 ‘관심사병’으로 특별관리되지만 정 이병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따로 조사를 벌였으나 군 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정황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군대 부적응, 이에 따른 심리적 갈등과 불안이 그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갔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유족은 그 달 24일 유해를 인수해 장례를 치렀다.
병무청은 군복무 부적합자를 더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최근 박사학위의 민간인 임상심리사를 채용, 전국 13개 징병검사장에 배치했다. 육군본부도 올해 초 인권담당관실(장교 4명, 부사관 1명)을 처음 설치했고 해ㆍ공군도 연말에 이를 도입한다.
군내에는 현재 민간인 전문상담관제도가 있고 지휘관의 병사관리가 과거보다 훨씬 세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1980년 147명이던 군내 자살자수는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간 평균 70여명으로 절반 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군이 장병들 인권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연간 자살자 숫자는 큰 변동이 없다. 한동안 줄던 자살자는 지난해 77명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13명 늘었다.
군 관계자는 “군내 자살률이 국내 평균보다는 낮지만 자식의 모든 것을 군에 맡기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더 세심하게 장병들을 관리해 군을 지금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안전하고 믿음직한 조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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