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글·사진 / 느린걸음 발행·304쪽·1만3,000원
레바논 남부 국경마을 까나는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의 공중 폭격을 받았다. 34일 간의 격렬한 전쟁이 휴전으로 멎은 후 몇 안되는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한 위로의 자리가 마련됐다. 쿠리아(한국의 현지 명칭)의 평화운동가이자 시인인 박노해(50)씨는 “너희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뭐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응석을 받아줄 준비가 돼있던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흐느꼈다. 누가 아이들의 해맑고 건강한 정신이 전쟁의 상처를 쉬이 이겨내리라 장담하는가.
이 책은 박씨가 작년 7, 8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직후 레바논을 다녀와 쓴 르포르타주다.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흑백 사진과 10편의 시를 함께 실어 기록과 진실의 간극을 줄이려 애썼다.
재작년엔 혹정과 쓰나미 피해로 고통받는 인도네시아 아체를 증언했던 박씨는 이 일련의 기록물에 팸플릿(pamphlet)이란 이름을 붙였다.
잡지와 단행본의 중간적 매체란 의미를 담은 말로, 각각의 장점인 시의성과 완성도를 두루 갖추고 문제적 현장의 진실을 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태를 바라보는 박씨의 시선은 강고하다. 눈엣가시인 헤즈볼라를 제거하려는 이스라엘과 카스피해 원유에 안전하게 접근할 송유관 확보를 원하는 미국의 음험한 결탁이 이번 전쟁의 원인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 신속한 복구가 요원한 폐허를 대면하는 그에게 기록자의 냉정, 객관 따위는 허위의 다른 이름이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풍요와 여유가 흐르는 북부 기독교 마을의 풍경에 저자는 아연하다. “어떻게 나 몰라라 웃을 수 있는가”란 질문에 “그런 게 인생”이라고 대꾸하는 부조리의 이면에 민중의 정치적 의사와 무관하게 종파 간 담함으로 권력을 나누는 정치 체제가 있음을 그는 간파한다.
이 나라 출신의 문호 칼릴 지브란의 시가 ‘지상의 고역’을 외면한 ‘천상의 고뇌’처럼만 느껴지는 박씨에게 헤즈볼라는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헤즈볼라 타도를 명목으로 일어난 전쟁에 고통 받았음에도 그들을 탓하지 않는 레바논 주민들의 태도에서 저자는 이 무장 정치조직의 묵직한 역량을 감지한다. 책엔 헤즈볼라 지도부의 나와프 무사위 국제국장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가 실려 있어 르포로서의 무게를 더한다.
저자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가의 여부와 무관하게 인간 존엄성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현장을 몸소 체험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언제나 소중하다. 80년대엔 노동문학의 기수였고, 현재는 ‘나눔문화’ 이사로 반전평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씨는 이번 책에서 내달 19일로 예정된 레바논 파병의 정당성을 거듭 묻고 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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