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글ㆍ나현정 그림ㆍ소민영 옮김 / 보물창고 발행ㆍ231쪽ㆍ9,000원
탐미주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두 아들에게 들려주던 동화들을 완역한 <행복한 왕자> 가 나왔다. 1888년 출판된 <행복한 왕자> 와 1892년 나온 <석류나무의 집> 에 실렸던 동화 9편을 묶었다. 언뜻 읽어본 듯하지만 축약본으로 봤거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대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다는 기쁨이 적지않다. 석류나무의> 행복한> 행복한>
왕궁을 떠나 도시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동상이 된 왕자가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황금과 루비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다는 줄거리의 표제작 ‘행복한 왕자’를 비롯해,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장미가시에 찔려가며 절명곡을 부르는 나이팅게일을 소재로 한 ‘나이팅게일과 장미’ 등의 작품은 사랑의 고귀함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동화는 선행을 베푸는 이는 행복하고 악행을 행한 이는 벌을 받는다는 식의 진부한 교훈을 주지 않는다. 가령 ‘헌신적인 친구’가 대표적이다.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직하고 착한 농부 한스는 ‘행동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궤변을 쏟아내는 인물 밀러의 아들을 돕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먼 길을 가다가 목숨을 잃는다.
밀러가 결국에는 벌을 받겠지 하고 기대했던 독자들은 황당하게 느낄 정도로 동화는 황급히 끝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이나 세상은 결코 동화 같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뼈아픈 진실을 전달하려 한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론을 실감할 수 있는 화려한 문장들, 생생하고 분석적인 캐릭터들에 대한 성격묘사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만만치않다. 동화답지 않게 작품마다 어두운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로테스크하고 현대적인 감각의 삽화는 오히려 그런 텍스트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앞부분에 실린 5편의 동화들이 다소 평이한 구조라면 뒷부분에 실린 ‘스페인공주’ ‘어부의 영혼’ 같은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법을 사용하고 다양한 인류학적 지식을 동원하고 있다. 초등학생이라면 읽는 데 약간 버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완독하고 나면 자라난 상상력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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