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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공무원을 놔둬라

입력
2007.06.2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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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무력화는 고교등급제로 가는 길이다. 최근 몇몇 대학의 조치는 학생들을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 범정부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이렇게 말을 던졌다. 2008학년도 대입에서 일부 사립대학이 내신 3~4 등급 이상을 모두 만점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단호히 대응하라는 주문이었다.

정부가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15일 아침 총리 주재로 관련부처 장관 긴급회의가 소집돼 해당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 등 강력한 제재방침이 세워졌다. 몇 시간 뒤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는 교육부 관계자가 나와 폭탄선언을 한다. 실질적인 내신 반영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높은 기본점수로 인해 실제 내신 반영 비율이 극히 낮은 현실에서 절반 이상으로 늘릴 경우 입시에 지각변동이 오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이미 발표한 입시 원칙을 바꾸지 않을 경우 재정지원뿐 아니라 교원 신규 임용도 불허한다는 초강경 대책도 연이어 나왔다.

● 대선 공약 조사는 선거개입

정시 모집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 수험생들의 운명이 걸린 입시원칙은 이렇게 춤을 추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대학이었지만, 정부의 대응은 너무나 상식 밖이다. 새 기준이 몰고 올 혼란을 교육부 관계자들이 모를 리 없다.

스스로 "치졸하다는 비난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학부모나 수험생이 겪을 혼란보다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는 폭풍으로 변할 수 있다는 '나비효과' 처럼 대통령의 한 마디는 공무원 조직을 요동치게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선 후보의 공약에 대해 정부가 타당성 조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다. 대통령 지시를 따른다면 모든 대선 후보들의 공약 하나 하나에 대해 정부 관련기관에서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외견 상 공정성을 유지하려면 그렇다.

그러나 실제 타깃은 야당후보가 될 것이 뻔하고 이미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약의 타당성이 아니라 정부 분석의 타당성을 놓고 소모적인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게 뻔하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대선 공약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마땅하다. 후보 개인에게 쏠렸던 관심이 이제 본격적으로 정책의 타당성에 모아지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다음 정부를 이끌어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겠다는 발상은 해외토픽에 날 만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검증은 후보들 간에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한다. 국민의 판단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걸지만 실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일이다.

● 공무원 선거중립 원칙 지켜야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7% 경제성장 공약이 "이회창 후보가 6%를 내놓길래 약 올라서 1%를 더 올린 것"이라고 고백한 사람이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해서는 "그 덕분에 재미 좀 봤다"는 말도 사석에서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남의 공약에 대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느냐"고 목청을 높이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소중한 원칙 중 하나다. 민주화 세력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노 대통령이 그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언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공무원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일은 절대로 안 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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