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지음 / 창비 발행ㆍ276면ㆍ9,800원
“결국 소중한 건 삶의 사소한 곁가지들인 것 같다”는,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인터뷰 때의 대답처럼 소설가 윤성희(34)씨의 단출한 문장은 저마다 소소한 삶의 마디를 싣고 지그재그로 달린다.
그 조각들로 이야기를 짜맞추는 재미가 쏠쏠하고, 곳곳에 매복된 유머를 무방비로 밟는 일이 즐겁다. 완성된 퍼즐을 감상하는 일마저도 유쾌할지는 알 수 없다. <레고로 만든 집> (2001) <거기, 당신?> (2004)에 이은 작가의 세 번째 작품집 <감기> 엔 11개의 퍼즐판이 놓여 있다. 감기> 거기,> 레고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마다엔 공통된 퍼즐조각이 있다. 우선 ‘구멍’. 구멍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공간이다. 토종닭을 구하려던 어머니가 닭을 껴안은 시체로 끌어올려진 우물(<구멍> )이자, 죽은 자를 파묻으려 관(棺)으로 쓴 드럼통( <등 뒤에> )이다. 등> 구멍>
그곳은 “상처의 진원이자 영원히 메워지지 않은 심연”(평론가 심진경)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통을 가능케 하는 징표여서 <감기> 의 두 남녀를 맺어주고 <안녕! 물고기자리> 속 네 여자의 서먹함을 걷어주는 것은 구멍의 육체적 표상인 흉터다. 안녕!> 감기>
그리고 ‘가족’이 있다. 윤성희 작품 속 가족은 대개 수가 많다.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대가족은 이야기의 씨줄날줄을 풍성하게 엮는 작가의 서술 전략에 충실히 복무한다. <이어달리기> 의 다섯 모녀는 그리 특출한 재주 없이도 솔직하고도 기꺼운 연대를 통해 번듯한 가족을 꾸려간다. <하다 만 말> 의 3대(代)는 ‘세계모텔’에서 ‘중국방’과 ‘이탈리아방’ 중 어디에 투숙할지부터 사사건건 어수선한 설전을 벌인다. 하다> 이어달리기>
그렇다고 작가가 혈연을 중시하는 건 아니다. 몇몇 작품은 가히 ‘가족의 탄생’이라고 부를 만한 풍경들도 수놓는다. <저 너머> 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나’를 두고 부모님은 캠핑카로 전국을 떠돈다. 가끔 외로움에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 또한 정체불명의 할머니 두 명과 무던하게 공동체를 꾸리는 수완을 발휘한다. 저>
마치 어떤 요소와도 기꺼이 결합하는 레고 블록처럼. 세 사람이 캠핑카 속 일군의 무리들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해체된 것도, 전통적인 것도 아닌,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가족을 모색하고 싶다”는 작가의 지향이 일궈낸 축제다.
또 하나의 조각으로 ‘선물’을 꼽자. 잔치국수 가게 사장이 콩나물국밥집을 하는 어머니에게 물려준 도마는 오대산 약초꾼이 딸에게 해준 혼수가 돌고 돈 것이다(<이어달리기> ). 이어달리기>
자기를 구하느라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부채감은 엉뚱하게도 낯선 중년 여자의 집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일로 해소된다(<무릎> ). 자본주의적인 일대일 교환 법칙에서 벗어난 시혜-수혜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소설”(평론가 김형중)을 쓰는 이 작가의 의뭉스러운 실천적 제안일지도 모른다. 무릎>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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