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정치인으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것에 대해 헌법학자들은 노ㆍ소장 구분 없이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대통령이 아닌 노무현 개인 자격으로 내면 상관없다'는 청와대 논리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대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학계의 원로인 권영성 한림대 석좌교수는 "헌법소원은 공권력으로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 당한 개인이 제기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공권력의 주체이지 기본권과 관련해서는 주체가 될 수 없어 이번 헌법소원은 반드시 각하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권 교수는 "청와대에도 법률가가 있는데 법대 1학년 학생도 아는 이런 사실을 왜 무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법학 권위자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도 "자연인 노무현이 행한 일에 대해 공권력이 간섭한 경우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안은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공직자 대통령의 발언이어서 헌법소원의 주체가 될 수 없고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심사에서 분명히 각하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대통령의 헌법소원 청구 사실이 외신으로 보도되면 법학자들이 외국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창피한 일"이라며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이건 완전히 코미디다"라고 성토했다.
헌법소원은 개인 자격으로 제기한 것이라는 청와대 설명에 대해, 권 교수는 "대통령으로서 발언해놓고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허 교수는 "자기의 권리가 침해 당한 것이면 노무현 개인이 헌법소원 청구방침을 밝혀야지 왜 비서실을 통하냐"고 쏘아붙였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대통령을 포함해 국가기관은 헌법소원 청구 자격이 없다는 것이 헌재 판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1995년 국회의 날치기 법안 통과에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이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낸 헌법소원에서 헌재가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기관은 헌법소원을 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개인 노무현으로 헌법소원을 낼 수는 있지만, 청와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헌법학회장을 지낸 한 법대 교수는 "선관위의 결정은 개인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 한 것인 만큼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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