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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 무엇이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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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 무엇이 달랐나

입력
2007.06.2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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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 한 음절 단어를 내뱉고,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포옹을 하고 <내 남자의 여자> 는 19일 떠났다. 화영(김희애)답다. 36.8%(AGB닐슨미디어리서치)라는 놀라운 시청률. 이 역시 끝까지 시청자를 잡고 가는 저력의 김수현 드라마답다.

화영에게 ‘가’는 남자를 버리고, 그 남자에 대한 모든 감정을 버리고, 자리의 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는 의미다. 앞서 준표(김상중)에게 말한 “끝내!”의 실천이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남자를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눈물은 있어도, 미련이나 미래는 없다. 잘라 버렸다. <내 남자의 여자> 는 이렇게 올 때만큼 모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왜 이런 끝을 선택했을까. 불륜이어서도, 그것이 주는 도덕적 비난이나 괴로움 때문에도 아니다. 화영의 말처럼 독해서도 아니다. 그녀는 결코 독한 여자가 아니다. 독한 여자는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독한 여자는 상대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해놓고 는 돌아서 혼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화영은 실망했다. 남자에게 절망했다. 그녀는 이를 “싫증났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아니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기”에 떠났다.

왜냐하면 그(준표)가 “단 한번도 완전한 ‘내 남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다른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걸 누리고 싶어, 사랑 받고 싶어서” 매달렸다. 세상이 그것을 ‘불륜’이라며 침을 뱉기에 더 간절했고,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집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구걸이란 사실을 알았다.

<내 남자의 여자> 는 불륜 드라마로서 특별한 길을 간 것도 아니다. 불륜이란 어차피 사회통념으로, 윤리적으로 ‘제자리’가 아니다.

더구나 그 자리가 원래 절친한 친구 지수(배종옥)의 것이라면. 그래도 화영은 그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이 이었으니까. 누군 “사랑 좋아하네. 사랑이 사레 들어 재채기 한다”며 비웃었지만, 한 남자와의 ‘사랑’에 올인했으니까. 그것이 몇 가지 사건(정관수술, 이혼서류보관 등)을 통해 배반당했다고 느낀 여자의 기분은 어떨까. 화영은 실망과 분노가 아니라 ‘허망함’이라고 했다.

그 허망함이 결국 반란을 막아준 셈이다. 그렇다고 <내 남자의 여자> 는 가장 쉽고 극단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풀고 용서하고 제자리로 모든 것을 돌려놓는 불륜드라마가 되기는 싫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용서와 화해와 회귀도 내키지 않았다.

솔직히 이제 그건 화영이 처음에 지수보고 옛날 작은 부인, 본부인이 한 집에 살 듯 함께 살자고 했을 때 어이 없어 해하듯, 현실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각자 살아 가는 상태’를 선언한 준표와 지수. ‘제2라운드의 인생’이라고 미화 하지만 이 또한 대단한 마무리도 아니다.

결말이 이런데도 <내 남자의 여자> 는 이전의 불륜드라마와는 다르다.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했을까. 격정적일 때 오히려 빛을 더 발하는 ‘언어의 마술사’ 다운 김수현의 탁월한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대사는 ‘여전함’일 뿐이다. <내 남자의 여자> 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시선의 변화에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도 ‘남자’도 아니다. ‘여자’이다. 그 여자는 바로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 가해자인 화영이다.

여기에서 ‘나(아내)’는 화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불륜드라마는 늘 초점이 배신감에 몸을 떠는 피해자인 ‘나’에게 가 있었다. 우리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가해자’로 치부해버리는 ‘여자’에 한번이라도 깊은 시선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내 남자의 여자> 는 그 ‘여자’를 통해 지독한 사랑, 간절한 욕망을 보았다.

때문에 남자도 달랐다. 가 보니 후회가 되더라 하며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하고의 관계만이 다는 아니잖아” 라는 준표의 말을 화영은 매정하게 잘랐지만, 준표가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화영이었다. 이별은 화영이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오직 사랑이 이유였다.

더구나 그 사랑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천박하다거나 진정성이 없는 한때의 욕정이라고 결코 매도하지 않았다. <내 남자의 여자> 가 숙명적으로 일정 부분 상투적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드라마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정도로 ‘김수현 드라마의 배우’ 김희애가 펼친 거침없는 연기가 준 리얼리즘도 큰 몫을 했다.

여기에 <내 남자의 여자> 를 좋아했던 시청자들은 한가지 쾌감을 더, 지금의 가능한 모든 길을 부셔버리는 결말까지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김수현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은 어차피 밀림이 아닌 길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길을 가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깊이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대한 드라마역시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라고.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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