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 한 음절 단어를 내뱉고,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포옹을 하고 <내 남자의 여자> 는 19일 떠났다. 화영(김희애)답다. 36.8%(AGB닐슨미디어리서치)라는 놀라운 시청률. 이 역시 끝까지 시청자를 잡고 가는 저력의 김수현 드라마답다. 내>
화영에게 ‘가’는 남자를 버리고, 그 남자에 대한 모든 감정을 버리고, 자리의 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는 의미다. 앞서 준표(김상중)에게 말한 “끝내!”의 실천이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남자를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눈물은 있어도, 미련이나 미래는 없다. 잘라 버렸다. <내 남자의 여자> 는 이렇게 올 때만큼 모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
왜 이런 끝을 선택했을까. 불륜이어서도, 그것이 주는 도덕적 비난이나 괴로움 때문에도 아니다. 화영의 말처럼 독해서도 아니다. 그녀는 결코 독한 여자가 아니다. 독한 여자는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독한 여자는 상대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해놓고 는 돌아서 혼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화영은 실망했다. 남자에게 절망했다. 그녀는 이를 “싫증났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아니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기”에 떠났다.
왜냐하면 그(준표)가 “단 한번도 완전한 ‘내 남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다른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걸 누리고 싶어, 사랑 받고 싶어서” 매달렸다. 세상이 그것을 ‘불륜’이라며 침을 뱉기에 더 간절했고,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집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구걸이란 사실을 알았다.
<내 남자의 여자> 는 불륜 드라마로서 특별한 길을 간 것도 아니다. 불륜이란 어차피 사회통념으로, 윤리적으로 ‘제자리’가 아니다. 내>
더구나 그 자리가 원래 절친한 친구 지수(배종옥)의 것이라면. 그래도 화영은 그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이 이었으니까. 누군 “사랑 좋아하네. 사랑이 사레 들어 재채기 한다”며 비웃었지만, 한 남자와의 ‘사랑’에 올인했으니까. 그것이 몇 가지 사건(정관수술, 이혼서류보관 등)을 통해 배반당했다고 느낀 여자의 기분은 어떨까. 화영은 실망과 분노가 아니라 ‘허망함’이라고 했다.
그 허망함이 결국 반란을 막아준 셈이다. 그렇다고 <내 남자의 여자> 는 가장 쉽고 극단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풀고 용서하고 제자리로 모든 것을 돌려놓는 불륜드라마가 되기는 싫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용서와 화해와 회귀도 내키지 않았다. 내>
솔직히 이제 그건 화영이 처음에 지수보고 옛날 작은 부인, 본부인이 한 집에 살 듯 함께 살자고 했을 때 어이 없어 해하듯, 현실도 아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각자 살아 가는 상태’를 선언한 준표와 지수. ‘제2라운드의 인생’이라고 미화 하지만 이 또한 대단한 마무리도 아니다.
결말이 이런데도 <내 남자의 여자> 는 이전의 불륜드라마와는 다르다.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했을까. 격정적일 때 오히려 빛을 더 발하는 ‘언어의 마술사’ 다운 김수현의 탁월한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대사는 ‘여전함’일 뿐이다. <내 남자의 여자> 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시선의 변화에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도 ‘남자’도 아니다. ‘여자’이다. 그 여자는 바로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 가해자인 화영이다. 내> 내>
여기에서 ‘나(아내)’는 화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불륜드라마는 늘 초점이 배신감에 몸을 떠는 피해자인 ‘나’에게 가 있었다. 우리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가해자’로 치부해버리는 ‘여자’에 한번이라도 깊은 시선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내 남자의 여자> 는 그 ‘여자’를 통해 지독한 사랑, 간절한 욕망을 보았다. 내>
때문에 남자도 달랐다. 가 보니 후회가 되더라 하며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하고의 관계만이 다는 아니잖아” 라는 준표의 말을 화영은 매정하게 잘랐지만, 준표가 끝까지 사랑한 사람은 화영이었다. 이별은 화영이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오직 사랑이 이유였다.
더구나 그 사랑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천박하다거나 진정성이 없는 한때의 욕정이라고 결코 매도하지 않았다. <내 남자의 여자> 가 숙명적으로 일정 부분 상투적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드라마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정도로 ‘김수현 드라마의 배우’ 김희애가 펼친 거침없는 연기가 준 리얼리즘도 큰 몫을 했다. 내>
여기에 <내 남자의 여자> 를 좋아했던 시청자들은 한가지 쾌감을 더, 지금의 가능한 모든 길을 부셔버리는 결말까지 바랐을 것이다. 내>
그러나 김수현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은 어차피 밀림이 아닌 길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길을 가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깊이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대한 드라마역시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라고.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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