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안고 있는 가정의 경우 월 소득에서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외환위기 시절 보다 훨씬 높은 위험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빚을 진 가구 10곳 중 1~2가구는 "이자율이 지금보다 2%포인트 더 오르면 대출부담 때문에 부동산을 매각하겠다"고 답했으며, "5가구 중 1가구는 집을 팔지 않으면 빚을 상환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이는 금리가 계속 상승할 경우 부채 부담을 이기지 못한 가계의 주택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급속히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일 '국내 가계대출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달 15일부터 9일간 전국 1,786개 가구를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통해 대출을 받은 515개 가구를 분석한 결과, 빚을 진 가구의 월 수입에서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4.5%로 1998년 외환위기 때의 11%를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가계의 지불이자 비중은 소득의 10% 미만으로 유지돼야 하며, 원금 상환을 포함하는 부채상환비용은 가계소득의 20% 이하로 유지돼야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중한 이자부담 때문에 한국 가계의 위기지수는 지난해 말 2.29까지 치솟아 신용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2분기의 2.06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특히 가계대출의 기준 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연 4.4%대에 머물렀으나, 최근엔 5%를 웃도는 등 1년 사이 무려 15% 가까이 올라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과도한 유동성 때문에 하반기 중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금리 상승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빚진 가구 중 14.5%가 "이자율이 지금보다 2%포인트 더 오른다면 대출부담 때문에 부동산을 매각하겠다"고 응답해, 현재 연 7% 안팎인 가계대출 금리가 9%대로 오를 경우 주택 매물이 크게 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동산을 매각하겠다는 계층은 중산층(14.9∼15.8%)이 가장 높았고, 저소득층(13.2%)과 고소득층(11.8%)이 뒤를 이어 금리 상승 시 부동산 시장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연구원은 분석했다.
대출금리 상승이 계속되고 부동산 가격하락이 본격화하면 이자비용 상승과 상환압력이 부동산 매각을 부추겨 부동산 가격을 계속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빚을 진 가구 중 20.2%가 현재의 기대소득 수준이라면 대출상환이 불가능하다고 답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되면 하락 폭이 걷잡을 없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주량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여파로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채무 감당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인데, 최근 들어 금리는 상승하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유지하는 등 외부환경마저 부채상환에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기존 가계대출의 만기를 늘리고, 만기 시에는 적절한 신규대출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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