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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여자-분홍, 남자-파랑…100년전엔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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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거꾸로 예술 바로 디자인] 여자-분홍, 남자-파랑…100년전엔 거꾸로?

입력
2007.06.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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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가? 빨강? 노랑? 분홍? 군청? 어린이였을 때 나는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즉답을 못해 당황하곤 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색의 조합은 있었지만, 딱히 더 좋아하는 색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의 나는 무척이나 민주적이어서 모든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상당히 편파적이어서 보는 이를 살짝 돌게 만드는 강렬한 형광 색상들을 특별히 더 사랑한다. 한동안은 소심한 중산층의 계급 상승 욕구와 연관되는 베이지나 회색, 충분히 검지 않은 검정을 경멸하기도 했다. 물론 어려선 그런 편견을 갖지 않았다.

눈이 아플 정도의 노랑이나 형광 핑크의 셔츠를 꺼내 입을 때, 나는 보통 남자들은 감히 몸에 두를 엄두를 내지 못할 색이라는 점을 의식한다.

유행에 맞춘 옷차림의 사람들이 당황한 눈길로 쳐다보면 심지어 기분이 좋을 지경이다. 즉, 나는 색을 통해 내가 누군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고른 색은 상징일 수도 있고, 힌트일 수도 있고, 함정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의 정체성과 연관된다. 자,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당신이 어떤지는 몰라도, 요즘의 어린이들이 어떤지는 분명하다. 여자 어린이들은 온통 분홍의 물건들에 포섭되고, 남자 어린이들은 온통 청색의 물건들에 연루된다.

이 분홍과 청색 사물의 두 세계는 대립적인 동시에 하나로 맺어진 대척점의 쌍이다. 사실 얼마전만해도 어린이의 성별에 따른 ‘색상의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실시했던 인종 분리 정책)가 이토록 분명한지 확신하기는 어려웠는데, 한 작가의 끈기 있는 탐구 작업을 통해 명백하게 입증됐다.

사진작가 윤정미의 <핑크&블루 프로젝트> 는 어린이들의 방을 방문해 그들이 소유한 특정 색상의 물건들을 과시적으로 배치하고 그 장관을 무대 삼아 물건들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다소 냉정한 태도로 촬영하는 기획이다.

남자 아이들의 방은 각종 푸른빛으로 가득하고 여자 아이들의 방은 각종 분홍빛으로 가득한, 일견 아주 뻔한 작업이다. 하지만 일관된 형식으로 촬영되고 프린트된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우선, 화면 속의 어린이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들과 특별한 감정적 관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남자 아이들 가운데 수퍼맨 망토를 두른 에단은 커서 씩씩한 이성애자 남자가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해 뵈고, 카메라를 조심스런 눈길로 응시하며 손을 만지작거리는 지민이는 아주 섬세한 내면의 세계를 발전시킬 것이 거의 분명해 뵌다. 여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연분홍빛 무도회용 드레스를 입은 테스는 ‘흑인 어린이 인형을 가진 백인 소녀’로, 자신만만한 여성의 자세를 취하는데 능숙하고 표정에서도 안정적인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누가 봐도, 다문화적 가치를 숭앙하면서도 다소 보수적인 아름다운 미국 여성으로 성장할 것 같다. (물론 이런 것은 죄다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여자 어린이들의 분홍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대개 초등학교 3-4학년에 이르면 사라진다. 분리주의의 역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어린이들의 옷이 남자는 청색, 여자는 분홍으로 나뉘어 있고, 나머지 액세서리는 자연스레 옷의 색상에 맞추게 된다.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색상의 분리주의가 2차 대전 이후에야 시장에 등장했다고 주장하는데 작가가 찾아낸 옛 신문 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1914년 미국의 <선데이 센티널> 3월 9일자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만약, 당신이 이 시대의 관습을 따르려면, 남아들에겐 분홍을, 여아들에겐 파랑을 사용하라.’ 청색의 헬로 키티나 바비 인형의 세계도 가능했다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어째 상상하니 좀 오싹하다. 편견일까?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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