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선거법 위반 시비가 제기되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선관위는 결국 선거법 위반을 선언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시 법적인 대응을 고려하는 분위기다. 한편 한나라당의 이명박 경선후보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대해 청와대 배후설을 주장하였고 결국 청와대와 쌍방 고소라는 법적 갈등에까지 이르렀다. 또 박근혜 경선후보 측에 대해서도 조작설을 제기하여 역시 법적 공방이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X파일 폭로에 법적 대응 만연
사실 선거 때마다 이와 유사한 상호 비방과 의혹설에 시달려온 우리 유권자들은 검증 공방이니, 대통령의 선거 관여니 하는 일들에 대해 상당한 면역성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이제는 어지간한 X파일에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아예 무슨 일만 있으면 법으로 응대하여 국민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려는 것 같다.
정치의 과정은 각 행위자들의 권한과 책임을 명시한 법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 그 운영은 정치제도의 운용, 적절한 절차와 게임의 규칙, 그리고 행위자들의 자질과 정치적 기술에 의해 이루어진다. 법은 정치적 절차와 규칙을 정하는 기반이자, 그러한 절차나 규칙이 적용되기 애매한 문제, 그리고 당사자 간의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갈등을 풀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적 대응이 남발되는 것은 절차는 무시되고, 무능한 선수와 무력한 규칙만 남은 어긋난 정치 게임의 일면을 보여 준다.
선진 정치는 사안에 따라 때로는 절차와 제도를 통해서, 또 어느 때에는 정치적 역량과 기술로 문제를 풀어가는 융통성 있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간 우리의 정치개혁은 참여를 보장하는 데에만 몰두해 온 결과, 요구하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쪽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정치행태를 양산해 왔다. 따라서 주장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지만 갈등을 푸는 세련된 정치적 역량을 갖추지 못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한 쪽이 문제를 제기하면 당장 법적인 대응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통령의 발언은 언사에 신중을 기하는 숙련된 수사를 통해 진작에 해결될 수 있었다. 실수이건 의도적이건 문제가 되었다면 법으로 시비를 따지기보다 먼저 유감을 표명하는 너그러운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될 일이다.
한나라당의 사정도 딱하다. 정작 후보자 검증에 나서야 할 언론이 뒷짐만 지고 있으니 결국 같은 정당 내에서 서로 상대 후보를 검증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이미 지난 해부터 언론을 통해 후보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여 유권자들에게 후보들을 평가할 기회를 주고 있다. 민주당 경선후보 중 하나인 오바머는 오래 전에 내지 않은 주차위반 벌금이 이슈로 제기되자 서둘러 이를 지급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아직 적수가 등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먼저 후보자를 가시화한 한나라당은 결국 자체 검증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자청하고 나섰지만, 좋은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명분이 무색하게 제 살 깎아 먹기 식 공방만 보여주고 있다. 선수가 곧 서로의 심판인 게임이다 보니 버티기 식으로 진실은 밝히지 않고 법적 대응이라는 엉뚱한 항변만 하고 있는 것이다.
● 잘못엔 멋지게 사과했으면
대선까지 6개월 남았다. 아직 후보자도 결정되지 못한 상황이니 그 동안 충분히 후보자들을 평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요즘 같은 형국이 더 가속화할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길다는 생각이 든다. 의혹이 제기되면 적절한 절차를 통해 밝히면 된다. 잘못했으면 멋지게 사과하면 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유권자가 할 몫이다. 우리는 법적 싸움이 아니라 정치적 역량과 절차의 묘미를 통해 선거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
곽진영·건국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