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유방암에 걸렸다? 뭔 해괴한 소리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다. 드물지만 남성 유방암 환자는 분명히 있다. 최근 들어 비만 탓인지 여성형 유방증 환자의 증가와 더불어 남성 유방암도 적지 않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남성 유방암은 쉽게 다른 장기로 침범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
지역암등록사업단의 자료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서울에서만 121명의 남성 유방암 환자가 발생했다. 50~54세가 가장 많아 22명이었고, 나이가 젊어지거나 많아질수록 감소했다.
문제는 남성들의 호르몬 불균형과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10~20대에서 여성형 유방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남성 유방암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여성형 유방증은 ‘남성 유방의 비대’라고도 불린다.
섬유지방 혹은 유방 조직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유방 자극작용 때문으로 추정할 뿐이다. 에스트로겐의 과다한 분비와 서구화된 식습관은 일반적인 여성의 유방암 발생원인과 비슷한 양상이다.
실제로 분당차병원 유방암센터가 2002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5년간 여성형 유방증으로 병원을 찾은 365명의 남성환자를 분석한 결과 이 중 5명이 유방암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상 발병률 통계에 사용하는 10만명당 수치로 따지면 연간 273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다. 2002년 서울시의 일반인 유방암 발병률이 남성은 10만명당 0.2명, 여성도 42.3명인 것을 감안하면 여성형 유방증의 273이라는 수치는 더욱 커 보인다.
이경포 분당차병원 외과 교수는 “남성 유방암과 여성형 유방증의 관련성에 대한 정확한 연구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에스트로겐 분비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성염색체 이상에 의한 에스트로겐 과다분비로 여성형 유방, 무정자증, 소고환(小睾丸) 등 성적 문제를 보이는 클라인펠터증후군 남성의 경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20배 가량 높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또 “남성은 여성에 비해 유선 조직이 적어 암세포가 유선 조직을 갉아먹는 시간이 비교적 짧아 주변 조직으로 빠르게 번지는 특성이 있다”며 “봉긋하게 솟은 여성형 유방증이 있거나 가슴에 딱딱한 멍울이 만져지면 즉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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