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바라보는 한 전직 경찰간부의 마음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는 조직이 망가지는 모습에 참담함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경찰의 외압ㆍ늑장 수사 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검찰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보복폭행 사건 자체는 전모가 거의 다 밝혀진 상태다. 김 회장 등 피의자들이 대부분 혐의를 시인하고 있는 데다 법원도‘적시(適時)처리사건’으로 분류된 이 사건을 최대한 빨리 처리할 태세다.
그러나 외압ㆍ늑장 의혹을 둘러싼 수사는 사건 발생(3월 8일) 100일이 지나도록 오리무중이다. 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4월24일 직후 불거진 “경찰 고위간부 중 최소한 2명은 옷을 벗게 된다”, “검찰이 경찰 수뇌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등의 각종 설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검찰은 아직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일선에서 갖가지 사건을 경험했던 전직 경찰간부는 무엇보다 이택순 경찰청장의 언행에 실망하고 있다. 고교 동창인 한화증권 유시왕 고문과의 통화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침묵을 지키다가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야 마지못해 해명을 거듭해온 그의 행태는 ‘15만 조직을 이끄는 수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유 고문과의 골프모임 등 ‘부적절한 접촉’ 의혹에 대해서도 “맞다”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밝히면 좋을 텐데,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애매모호한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넘어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골프모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이 서울 근교의 골프장 3곳을 압수수색 한 것에 대해서는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골프장에 수사관 2,3명을 보내 몇 시간만 조사하면 라운딩 여부를 금세 파악할 수 있는데 호들갑을 떤 것은 경찰 망신주기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통화내역을 조회한다면서 경찰청 서버(전산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 등은 지나치다고 했다. 경찰 일각에서도 “검찰이 이 청장은 물론 경찰 조직 전체를 손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당사자인 이 청장은 요즘 생기가 넘친다고 한다. 그는 최근 “ 무더위가 이어지면 장마가 오듯 수사가 길게 가는 것 같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 이 청장 본인은 문제될 게 없으며 이는 곧 밝혀질 것이라는 소망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경찰 수사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달 말 정기인사도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야 조직이 살아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제도 및 근무여건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검찰 수사 결과 이 청장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게 될까. 그는 경찰 총수로서의 입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경찰 내부도 “진작 결단을 내렸다면 경찰이 이렇게 망신 당하는 일은 없었다”는 게 대체적 정서인 것 같다.
전직 경찰간부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검찰이 죄가 없다고 인정해 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높은 사람의 지혜로운 처신이 아쉽다.
이종수 사회부차장 j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