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밥 먹자고 평양으로 부른 것도 아니고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빈손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의 방북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이 같이 평가했다. 힐 차관보의 방북은 한반도 비핵화 진전의 중대 전환점이 될 것이란 전망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이 북측의 초청에 따른 것이란 점이다. 이 때문에 북측이 비핵화와 관련한 중대 결심을 하고 미측에 이른바 ‘통 큰 제안’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측이 2ㆍ13합의의 핵심인 모든 핵 시설의 불능화에 대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다. 3월 6자회담 당시 북측의 김성기 차석대표는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반환 문제만 해소되면 비핵화 일정을 밝히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걸음 더 나가 북측이 한ㆍ미가 상정하는 ‘연내 불능화’에 대해 긍정적 입장 표명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힐 차관보가 18, 19일 방한 당시 “연내 불능화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은 예사로이 볼 수 없다. 이미 방북이 확정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측도 비공식적으로 연내 불능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북측의 최대 관심 사항인 북미 관계 정상화 일정을 북측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측은 불능화에 상응한 관계 정상화 조치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힐 차관보가 “핵 폐기 조치에 상응한 북미 관계 정상화 의지”를 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서나 메시지를 북측의 최고위층에 전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 당국자는 “힐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위층의 재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2ㆍ13합의에는 비핵화뿐만 아니라 관계 정상화 등 상응 조치가 포함돼 있는 만큼 전체 이행 과정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북핵 문제의 최대 의혹 중 하나인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과 관련된 제안과 경수로 제공 문제도 언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힐 차관보가 파키스탄의 압둘 칸 박사로부터 북측이 구매한 HEU 개발 장비를 재구입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힐 차관보의 방북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방북 이후 4년 8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고위급 방문이다. 켈리 차관보의 방북이 북측의 HEU 프로그램 의혹이 불거지면서 2차 북핵 위기를 부른 것과 달리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은 북미 관계 전환의 신호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이날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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