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선 후보의 공약에 대해 정부가 타당성 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후보 위에 국민이 있으므로 누구의 정책이든 타당하냐 안 하냐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전제가 있으니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이 앞장 서 정부의 선거 개입을 독려한 것으로, 경우에 따라 정부의 위법 사례를 양산할 가능성을 부추기는 오만한 발언이다.
대선에서 중시해야 할 요소 중 하나가 정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여러 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을 판단하기 위해 객관적 자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를 억제할 이유나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정부만큼은 반드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은 같은 무게의 상식이다. 관권선거라는 말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은 선거에서 정부의 중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단 자료 제공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가 후보 공약에 대해 개입할 경우 현실적으로 남아날 공약이 몇 개나 되겠는가.
대선 후보, 특히 야당 후보의 공약에 대해 그 타당성을 정부가 나서 긍정적으로 판단해 줄 리가 만무하다. 어떤 선거라도, 선거는 집권 정부에 대한 비판과 거부, 즉 심판이라는 의미를 담기 마련인 것이 민주주의 원칙이자 원리이다. 때문에 정부가 선거 공약을 판단하는 행위는 원초적으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돼 있다.
헌법과 법률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 개입을 금지하는 것은 권력 행사의 본능적 흐름이 그런 식으로 가게 될 개연성을 견제하고 차단하려는 뜻으로 알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제공하라”고 했지만 그가 우리 선거에서 국회가 얼마나 정파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이를 “대통령의 명령”이라고까지 했다. 정부와 공무원들에게 마치 총동원령을 내리는 섬뜩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뿐만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야당 후보를 공격할 자료 제출 요구를 하라, 나와 정부가 얼마든지 돕겠다”고 한 메시지나 다름 없다. 될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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