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이왕이면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으면 더 좋다. 아니, 그렇게 돼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엄숙하고 무겁기만 해서야 정치다운 정치가 아니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 정치인도 연예인과 같은 즐거움을 대중에 선사할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대중에 노출되고 대중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직업의 속성은 공통점을 갖는다. 대중이 즐거이, 흔쾌히 박수 치고 춤 추게 해야 하는 정치는 이런 의미에서 얼마든지 쇼가 돼야 한다.
■57만여 표 차이라는 간발의 승부였던 2002년 대선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선거로 꼽힌다. 선거 전 10개월 동안 여론의 지지도와 대선 구도는 무려 6번이나 뒤바뀌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팍팍한 승부의 무대에서 양념 같은 조연 역할로 객석을 즐겁게 해 준 존재는 민주노동당이었다.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는 계속되는 후보토론회에서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 사이를 자유자재로 비집으며 싸잡아 비판, 때로는 폭소를, 때로는 후련함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불쑥불쑥 던져대는 촌철살인의 신조어로 인기를 끌었는데, 신문들은 이를 ‘권영길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에게는 ‘낡은 정치’라고, 민주당에게는 대통령 아들 비리 등을 들어 ‘부패 정권’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토론회에서 그가 양당에 붙인 새 이름들은 비판과 풍자를 겸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가령 “교육개혁 입법을 무산시키고 그 책임을 민주당에 넘겼다”며 한나라당을 ‘적반하장당’이라고 불렀고, “교육부 장관을 7번이나 바꾸면서 정책이 갈팡질팡했다”며 민주당은 ‘변화무쌍당’이라고 명명했다.
또 한나라당은 외환위기를 불러 ‘국가경제파괴당’인데 비해 민주당은 정리해고를 단행해 ‘가정경제파괴당’이고, 한나라당이 ‘부패원조당’이라면 민주당은 ‘부패개업당’이라고 비꼬았다.
■어차피 양자 승부와는 무관한 제3의 존재는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경선의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의 존재가 그런 모습으로 비친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탈당하자 경선 흥행사가 없어져 아쉬워 하던 한나라당에 제3 후보로서의 양념 노릇이다.
“가난한 촌놈이 맨 주먹 하나로 상경해 그 흔한 ‘빽’ 하나 없이 세상의 강자들과 좌충우돌하며 입지를 다져온 인생역정”에서 ‘모래 시계 검사’ ‘DJ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었던 그다. 경선에 나서면서 그는 “지난 두 대선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경력을 가진 엘리트 후보를 내세우고도 패배했다”며 “우리의 눈으로는 최고였지만 국민의 눈에는 흠 있는 후보였다”고 했다.
국민의 이번 눈은 어떨까.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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