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 문학과지성사'한 권의 책'의 미스터리…운명과 추억의 이야기
모든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된다. 표지 사진에서 보듯, 바르셀로나의 안개 낀 어느 새벽에 열 살 소년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찾아간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이 이 소설 제목과 같은 <바람의 그림자> 다. 책 속의 책이다. 바람의>
소설은 스페인 내전을 전후한 20세기 전반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소년이 우연히 갖게 된 한 권의 책과 그 작가에 의문을 품으며 겪게 되는 우정과 사랑, 배신과 증오, 부재와 상실의 이야기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미스터리로 포장된 줄거리가 대중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을 값싼 읽을거리에서 건져올리는 힘은 세르반테스에서 보르헤스를 거쳐 마르케스에 이르는 스페인어권 문학 전통의 그것이다.
작가는 그리스 비극에서 현대 영화 이미지까지의 문화적 지식을 교양과 유머로 배치하고,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영상문법으로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은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에는 다만 후회가 있을 뿐 두번째 기회 같은 건 없단다.” “인생은 이제 한 사람을 도망자로 만들었고 또 한 사람은 죽어가고 있었어. 그 둘 다 그것이 인생이 자기들에게 돌렸던 카드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그 카드를 가지고 베팅을 했던 방법 때문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지.”
두 번 바르셀로나에 가 본 적이 있다. 오랜만에 소설 읽기의 행복감을 주던 이 책에 빠져있던 시간, 책에서 ‘초콜릿을 녹여 만든 커다란 빗 같았다’고 묘사된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이 있는 바르셀로나 도심과 은성한 람블라스 거리, 바르셀로네타의 해변, 그것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몬주익 언덕이 몹시도 그리워지던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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