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생물학자들의 관심은 두 가지 분자에 집중됐다. 유기체의 주된 성분이자 효소ㆍ내분비물 형태로 다양한 작용을 하는 단백질과, 단백질 합성을 지시하는 유전정보를 담은 DNA였다. DNA와 닮았지만 다른 분자인 RNA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RNA는 오랫동안 DNA의 유전정보를 전하는 전령(mRNA), 단백질 원료(아미노산)를 단백질 공장(리보솜)으로 운반하는 짐꾼(tRNA), 단백질공장의 일꾼(rRNA) 정도로 여겨졌다. 이 세 가지가 전체 RNA의 95%에 이른다.
■그러나 ‘전령ㆍ짐꾼ㆍ일꾼 RNA’ 외의 수많은 RNA가 발견되고, DNA나 단백질 못지않은 중요성이 밝혀지면서, RNA가 세포의 진정한 주재자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 RNA다. 93년 첫 발견 이래 현재까지 600여 종이 발견된 소형 RNA로 약 30%의 인간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암이나 중추신경계 유전병, 심지어 전염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획기적 의학 발전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며 이미 선진국에서는 RNA를 활용한 치료법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벌레와 인간 모두 단백질 합성 유전자는 약 2만개로 비슷하다. 따라서 전통적 유전자 이론으로 진화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진화의 진정한 요인도 RNA의 역할 변화일 개연성이 크다. 유기체가 복잡해질수록 RNA의 역할이 커진다는 점에서 해답은 역시 RNA가 쥐고 있는 듯하다.
침팬지와 인간의 뇌를 비교할 때 뇌 속의 소형 RNA 중 8%는 인간에게만 있다. 그래서 단백질 합성을 위한 유전자는 오히려 소수이고, 유전자는 결국 RNA 공장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또 약 20종의 마이크로 RNA가 배아줄기세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줄기세포가 어떤 세포로도 발전할 수 있는 이유이다.
■RNA가 유기체의 복잡성을 제어한다면 세포의 RNA는 단순히 그 세포만 운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세포의 RNA와도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RNA는 세포의 운용체계(OS)일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원자 내 제3의 입자인 중성자의 발견이 20세기를 물리학의 시대로 만들었듯, RNA 연구가 21세기를 생물학의 시대로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컴퓨터 자판의 한/영 전환 단추를 잘못 눌러 RNA를 쳤더니 ‘꿈’이 됐다. 우연의 일치지만 꼭 무슨 계시 같다. 이코노미스트>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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