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칠리 냉스파게티…
야외극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재미난 영화를 보는 ‘평일 심야데이트’는 커플이기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 중 하나다.
그날은 야외극장에서 맛난 야참을 먹으며 영화 <밀양> 을 보자던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을 부랴부랴 끝내고 나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더욱이 오늘 데이트는 각자 준비해 와야 할 과제가 있었다. 간단한 야참을 한 가지씩 만들어 오기로 한 것. 밀양>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는 슬픈 영화를 보면 훌쩍거리며 울어버리는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밀폐된 실내 극장 안에서는 공공의 매너를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며 흐르는 눈물을 참아야 했던 그녀다.
늘 슬픈 영화를 보고 나올 때면 습관처럼 볼멘 목소리로 “오빠 너무 울음을 참았더니 목이 아파 죽는 줄 알았어”라고 종알댄다. 그런 그녀가 오늘 작정하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어 버리고 싶다기에 차 안에서 영화를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솔직히 음식을 준비해가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훌쩍거리며 우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결국 그녀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할 매운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고추가 듬뿍 들어간 ‘칠리 냉스파게티’!
매운 칠리소스에 들어 있는 매콤한 고추에는 캡사이신 성분이 들어있다. 이 성분은 우리 몸이 통증을 느끼게 하는 통각세포를 자극해 입과 코를 자극하고 이러한 통증을 느낀 우리 몸은 해로운 것이라 느끼게 되어 땀이나 눈물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이런 원리대로라면 그녀의 눈물샘은 촉촉이 젖어버리겠지….
오랜만에 찾은 야외 자동차극장은 이미 뜨거운(?) 커플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꺼내 영화 볼 준비를 했다. 영화는 비장한 음악과 함께 곧 시작되었고 줄곧 심란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었다. 중간쯤 봤을까? 영화의 내용이 슬슬 지루해 진다 싶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심각한 장면이 계속되자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매운 스파게티를 물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도연이 울면 마치 자신이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라고 착각하는 양 더 크게 엉엉 울어댔다.
괜히 나 혼자 음식 먹기가 어색해서 먹다 말고 그녀를 쳐다보니 ‘오 마이 갓!’ 그녀는 눈물도 모자라 땀에 콧물까지 범벅이 되어 엉엉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 하나, 사랑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내가 자극한 것은 그녀의 눈물샘이 아니라 콧물샘이 아니었을까.
스파게티면 100g, 껍질콩 3개, 홍색 황색 피망 1/4개씩, 적양파 1/6개, 물 적당량, 얼음 약간
소스: 칠리소스 2큰술, 타바스코소스 1큰술, 간장 1작은술, 올리브유 1작은술, 소금, 통후추 약간씩
1. 피망은 깨끗이 씻어 얇게 채썰고 적양파는 껍질을 벗겨 얇게 채썬다.
2. 껍질콩은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적당히 썬다.
3. 끓는 물에 스파게티면을 넣고 삶은 후 찬물에 얼음을 넣어 차게 식힌다.
4. 볼에 준비된 분량의 재료를 넣어 잘 섞어준 후 손질된 야채와 삶은 면을 넣고 잘 버무려 얼음과 곁들여 낸다.
글ㆍ사진 박용일 푸드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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