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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집' 황정민 "무대에 서기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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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집' 황정민 "무대에 서기만 하면 돼요"

입력
2007.06.2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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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황정민(37)은 참 고지식하다. 주변에서 아무리 추켜세워도, 평론가나 관객이 무슨 타이틀을 갖다 붙여도 미동이 없다. “배우는 연기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고,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오직 시나리오”라고, 툭 던지는 그의 얘기엔 진심이 담겨 있다. 스스로를 ‘온리(only) 배우’라는 이 우직한 사내의 얼굴에 <너는 내 운명> 의 순애보 석중의 표정이 포개진다.

그래서 <달콤한 인생> 의 백 사장처럼, 레이저광선을 뿜을 듯 사이키델릭한 눈빛의 황정민을 발견하는 건 낯선 즐거움이고, 쉽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가 21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검은집> (감독 신태라)에서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맞서는 심약한 보험조사원으로 변신했다.

“<달콤한 인생> 의 백 사장 같은 ‘센’ 연기가 오히려 쉬워요. 이번 역할은 리액션(다른 배우의 대사ㆍ행동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연기)을 통해 사이코패스라는 극단적 인간의 공포를 드러내야 했기 때문에 훨씬 어려웠죠. 그래서 더 매력을 느꼈던 캐릭터였어요.”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는 표정으로 엽기적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역할이 더 끌리지 않았냐고 묻자 황정민은 손을 내저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얘기’에요. 배역도 결국 얘기의 흐름 속에 있는 거니까요. 그 얘기가 마음에 들면, 난 어떤 역할이든 개의치 않아요.”

그러나 ‘황정민 최초의 스릴러’에서 황정민 만의 불가해(不可解)한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그런 실망감을 눈치 챘을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이라며 자신의 에너지를 숨겨 놓은 곳을 슬쩍 가르쳐 줬다. “마지막 부분 작은 공간에 갇혔을 때, 범인의 칼이 문틈으로 들어 오잖아요. 그 때의 내 표정,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범인을 이해하고 싶어 갈망하는 양면적 심리, 그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스타라고 불리는 것을 아직도 어색하게 여기지만, 황정민은 티켓파워를 지닌 몇 안 되는 ‘브랜드 배우’가 됐다.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라도 흥행이 될 만한 영화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황정민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난 일개 배우일 뿐이에요.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어요. 대본을 통해 관객과 얘기하고픈 부분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우인 이유에요. 투자자의 역할, 감독이 고민할 부분까지 배우에게 떠넘겨서는 안 돼요. 그럴수록 영화는 ‘후지게’ 나와요.”

그는 ‘온리 배우’의 자세가 어릴 때(그는 대학로 시절을 ‘어릴 때’라고 부른다)부터 몸에 밴 것이라 했다. “때론 관객이 없어 공연을 못하고 어떨 때는 너무 많아 그냥 돌려보내고…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나는 어떤 상황에서건 무대에 서 있는 배우라고.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거라고.”

나쁘게 보자면 ‘꽉 막힌’ 배우지만, 이런 고지식함이 황정민의 매력이다.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눈빛에서 때로 섬뜩한 레이저광선이 나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그는 <검은집> 작업을 마친 뒤 10권을 샀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책 같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좋아요. 잔잔한 감동과 성찰의 기회를 소설 같은, 그런 영화를 하고 싶어요.”

● <검은집> 은 선천적인 전두엽 이상으로 죄책감과 동정심 같은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은 스릴러.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을 품고 사는 보험조사원 전준오(황정민)는 자신이 맡은 보험사기꾼이 사이코패스임을 알게 되고, 끔찍한 범죄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색다른 소재를 선택했지만 공포를 자아내는 영화적 요소들은 히치콕적인 고전 호러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양들의 침묵> 에서처럼 사이코패스 캐릭터 자체에 공포를 담지 못하고, 피칠갑이 된 무시무시한 세트에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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