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떠난 뒤, 대한민국 정부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곳에는 혼란, 안도감 그리고 93만 명으로 불어난 관료집단이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지난 4년 여는 나쁘지 않은 세월이었다고 본다. 노 대통령 만큼 관료에게 애정을 보인 대통령은 없었다. 특히 고위관료에게는 이만한 정권이 없다. 노 대통령은 공직사정(司正)으로 불리는 기강확립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박 정권 때 서정쇄신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김대중 대통령 조차 기간을 정해 고위공무원의 부정과 직무유기를 집중 적발했다.
노 대통령은 도리어 자리를 늘려주고, 수시로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보낸다. 관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독특한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야당과 언론, 심지어 여당에서조차 배척을 받는 상태에서 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지지기반이자 정치적 동지가 되어 줄 것으로 여겨왔다. 동지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양쪽의 만남은 처음부터 부적절해 보였다. 2003년 참여정부의 첫 국정토론회. 대통령 앞에서 한 간부가 과감하게 튀었다. 신문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다 “공보관의 업무는 기자 술 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더니 “대통령의 미국방문 성과가 좋았는데, 잘했다는 기사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 해 5월의 방미는 한양대 리영희 교수도 “무식을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왜 언론이 칭찬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나마 공보관 얘기는 허위사실이나 다름없지만, 어쨌든 그는 차관을 거쳐 장관급 대사로 승진을 거듭했다.
그 뒤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그려주는 관료들이 줄을 이었다. 지금 대입 내신처리의 혼란도 핵심은 4월 서울대 방침을 사실상 용인하고도 말을 바꾼 당국자들 때문이다. 일본을 언론후진국이라고 분류하는 이 정부의 엽기적인 잣대도 결국은 관료들이 대통령 뜻에 영합한 결과다.
선거로 선출돼 행정조직을 개혁해야 할 집권세력이, 도리어 관료들에게 사로잡혀 조종당하는 현상을 포획(捕獲)이라고 한다. 이번 정부의 경우는 공무원들을 정치적 우군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했으니까 불륜에 가깝다.
요즘 공직사회에서 노 대통령의 평판은 “어떤 작은 인연도 끝까지 챙겨준다”는 것이다. 보상을 잘해준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전체 고위직수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렸다. 국민의 정부 때 32자리 이던 장관급 자리가 2005년 말까지 38자리(15% 증가), 차관급은 72개에서 94개(27%)가 됐다.
전체공무원 수도 4만8,499명 5.67% 늘었지만 국장(3급) 이상을 따지면 1,364명에서 1,551명으로 11.3%나 늘었다. 시내 빌딩 곳곳에는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에 자리가 없어 밖으로 나온 정부기구의 간판이 보인다.
정부예산이란 단돈 1원도 근거가 필요한 법인데, 요즘 펑펑 돈 쓰는 것이 무섭다고 털어놓는 관료도 있다. 우리 세금으로 주는 대통령의 선심이다. 그런데 고위직을 더 만들려고 입법을 추진하는 부처가 있다.
대통령과의 밀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 후 구성될 대통령직 인수위가 국회와 감사원이 밝히지 못한 거짓과 낭비를 밝혀야 한다. 효율적인 새 정부를 만들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작업이다. 흥청망청하는 정부를 보면서 과연 누가 주인인지, 누구의 돈인지를 가리고 싶어하는 게 요즘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유승우 기획취재팀장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