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몽골의 대서사시 <게세르> 가 유원수씨의 노고로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반갑고 고맙다. 그리스ㆍ로마 신화만 판을 치는 한국적 현실에서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게세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신화, 전설, 민담을 아우르는 서사시 분야에서는 중앙아시아와 인도가 서양을 저만큼 제친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키르기스의 <마나스> , 몽골의 <장가르> , 인도의 <라마야나> 와 <마하바라타> 서사시 등등이 그러하다.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장가르> 마나스>
● 동양고전 번역 소홀한 인문학계
<일리아드> 와 <오디세이> 만 본 사람과 <마나스> 까지 읽고 자란 학생이 가슴에 품는 세계의 크기와 수준은 엄청 다르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본이 없다. 그래서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마나스> 오디세이> 일리아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잘 배워서 그런 작품들을 우리말처럼 술술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공자가 드물고, 한 사람이 옮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상업성도 낮으니 출판사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인문학계는 허구한 날 위기여서 이런 문제를 절박한 과제로 인식할 능력조차 없다. 학자나 전문가만 믿고 기다리다가는 토끼 머리에 뿔 나고, 거북 등에 풀 돋기를 바라는 격이다. 그래서 늘 답답하고 화가 난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2를 보면서 묘책이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MIT를 나온 천재 동생이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형을 탈옥시키는 내용인데 지금 1부가 지상파에서, 2부는 케이블에서 방영 중이다. 그러나 웬만한 분들은 2부 22편 다 본 지 오래다. 프리즌>
네티즌 내지 ‘미드(미국 드라마) 폐인’들이 현지 방영 즉시 어떻게 구했는지(이건 극비다) 전편을 인터넷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어 자막을 충실히 달아서. 어떤 대사에는 주석까지 붙였다(이 얘기는 미국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합시다. 베른협약 위반이니까).
미드 폐인들의 이런 헌신과 열정을 인류의 위대한 서사시에도 쏟아보면 어떨까. 원어를 모르신다고요? 별 상관없습니다! <마하바라타> 만 해도 산스크리트어 몰라도 잘 된 영어 번역본이 인터넷에 여럿 올라 있다.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서 저작권법 위반도 걱정할 필요 없다. 개미들이 달라붙어 나눠서 번역하면 질은 좀 떨어지겠지만 아예 못 읽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마하바라타>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 한 가지. 기왕 하려면 판본을 잘 골라야 한다. 판본 따라 내용과 느낌이 하늘 땅 차이니까. <게세르> 서사시 사계절 출판사 한글본의 경우 불교적 색채가 짙은 18세기 몽골어 판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게세르>
반면 러시아연방 부리야트몽골공화국의 사랑게렐 오디곤씨가 최근 몇 년에 걸쳐 영어로 인터넷에 띄운 판본(http://www.buryatmongol.com/halaa1.html)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싱싱한 샤머니즘 세계의 냄새가 물씬 난다. 첫 대목부터 ‘죽인다’.
“태초 하고도 아주 태초에/ 여러 시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시대에/ 처음 하고도 맨 처음인 때에/ 드높은 밝은 하늘이 안개로 회오리치고/ 저 아래 땅은 진흙과 티끌로 뒤덮이고/ 풀은 아직 자랄 생각도 못할 때/드넓은 가람들은 흐를 조짐조차 없고/ 거대한 우윳빛 호수는 한 줌 연못에 불과하던 때/ (…) / 사람이 다니는 길도 나지 않았던 때/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노라고/ 사람들은 지금도 이야기한다!”
천지 창조와 신들의 다툼으로부터 영웅의 탄생과 지상에서의 활약까지를 광활한 초원처럼, 대하장강 같은 입담으로 풀어가는 이 판본은 가히 압권이다.
● 네티즌 열정모아 쌍방향 번역을…
이런 고전들을 네티즌과 재야 고수들이 열정을 합쳐 우리말로 옮겨 보자. 동시에 우리 고전은 영어로 바꿔 세계에 올려 주자. 미래 세대의 지성과 감성을 풍요롭게 할 동서고금의 고전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광일·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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