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중앙선관위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에 대해 거듭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 7일 비슷한 결정에 즉각 반발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밤을 넘기고, 회의를 통해 정리한 의견을 발표하는 등 짐짓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청와대 발표문에는 노골적 빈정거림만 가득할 뿐 일말의 자성도 찾아볼 수 없다.
“선관위의 권한을 확대ㆍ강화하고, 권위를 드높인 결정”이라거나 “대통령은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려 한다”는 말만 보면 부분적 수용의사를 밝힌 듯하다.
그러나 “결과는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이라거나 “앞으로 일일이 발언하기 전에 선관위에 질의해, 답변을 받아서 하겠다”는 데 이르면, 모든 것이 지독한 비꼬기임이 확연해진다. 대통령과 주변의 법 인식이 이토록 뒤틀려 있을 줄이야.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선관위가 세 차례나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선거법 9조가 정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지만 어디에도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는 없다.
그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명박의 감세론, 복지정책 골병 든다” 등과 같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 정책을 비난하는 노골적인 행위만 자제해 달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노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이런 뻔한 사실을 모른 척하면서, 선관위의 ‘선거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비꼬고 있으니, 이야말로 법치주의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명백한 법률 위반과 그에 따르는 국민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주눅 들지 않는 까닭이 궁금하다.
선관위 결정이 너무 가벼워서 견딜 만하다는 뜻인가. 정치적 비난 여론은 많이 겪어서 면역력이 생겼다는 것인가. 아니면 ‘선거중립 의무 위반’은 벌칙 조항도 없고, 더욱이 대통령의 위반 행위는 탄핵 이외의 어떤 실질적 소추 수단이 없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나중에 ‘법질서의 파괴자’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선관위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 자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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