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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뜨거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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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뜨거운 녀석들

입력
2007.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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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유토피아의 모습을 닮은 소읍의 이상향을 꿈꿀 때 나타나는 이미지는 대략 무엇일까? 한적하고 작은 마을에 황소가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긋고, 느리적 느리적 거리며 마을을 한바퀴 돌아도 시간은 여전히 참하게 나를 기다리는 곳. 한마디로 내가 꿈꾸는 소읍의 이미지란 '소음, 공해, 범죄' 없는 삼무의 낙원이렷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로서의 소읍의 이미지가, 특히 범죄율 0%라는 불가능의 숫자가 영화에만 이식되면 이야기가 쬐금은 달라져 버린다.

<에디슨 시티> 에서 범죄율 0%인 최고의 모범 도시의 배후에는 사실 F.R.A.T라는 특수비밀경찰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겉보기와 달리 마약을 갈취하고 마약상들의 입을 막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 역시 범죄를 미리 예언하는 프리크라임제도 때문에 범죄율 0%를 자랑하지만, 영화는 가면 갈수록 범죄예방 감시사회의 어두운 전망을 숨기지 않고 비판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범죄율 0%란 오히려 역설의 숫자, 그 밑에 엄청난 범죄집단의 마스크가 덧씌워진 뭔가를 기대해도 좋다는 복선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새 영국영화, 누구나 공인하는 잡탕장르 경찰무비인 <뜨거운 녀석들> 에서도 이러한 암묵적인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니콜라스 엔젤(사이먼 페그)이라는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런던경시청의 천하무적 경찰양반은 어쩌다 보니 범죄율 0%를 자랑하는 지방소도시 샌포드로 전근을 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이웃사촌으로 알고 있고, 범죄예방차원의 시민자치 기구도 있는 이 마을. 처음엔 역시 범죄율 0%의 아담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좌충우돌 코미디 스웨덴영화 <깝스> 의 아류작은 아닐까 예측해 보았건만, 마을을 둘러싼 흉악한 진실은 영화를 갑자기 핏빛 공포물로 유턴시킨다.

사실 가장 선해 보였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동체가 자기마을의 허위적인 이미지만을 지키는 사악한 이익집단이었던 것. 이 부분에서 우리는 감독 에드가 라이트와 각본가이며 주연배우인 사이먼 페그가 패러디하고 싶어하는 실상은 바로 보수와 전통으로 치장한 영국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국 내에 파키스탄인과 인도인들이 넘실대는데도, 여전히 빗장을 걸어 잠그고 전통타령만 하는 영국사회. 그로 인해 노령화되고 보수화 돼가는 영국의 모습이 총질을 하는 신부와 쌍권총 휘두르는 교수와 사람 죽이는 의사라는 상상할 수 없는 기호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그러니 영화 속 범죄율 0%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비관적인 예감에 관한 어떤 영화적 '코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장 고결하고 가장 순결해 보이는 이들 보수집단은 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으므로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으며 ‘배반의 장미’ 같은 파시스트 집단을 꿈꾼다. 이 모든 상징이 바로 0이라는 숫자에 들어가 있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아닌가.

범죄율 0%의 소읍이라는 설정에서 대략 난감, 이미 짐작 가능케 하는 줄거리. <폭풍 속으로> 에서 <스크림> 까지 종횡무진 각종 영화를 패러디하며, 예측불허하게 신나게 놀아 보자고 덤비는 이 짬뽕 장르 경찰영화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유일한 진부함이었다.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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