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직함을 여러 개 갖고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엔 탐욕에 중독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선의로 그러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 시민운동가나 지식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시민운동에 대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그건 시민운동 탓이라기보다는 한국 특유의 문화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연고주의 문화와 종교문화는 일반 시민이 시민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에너지·돈의 3요소를 선점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각종 결사체는 명망가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고, 바로 여기서 서로 이름을 걸어주는 품앗이가 이루어진다.
● 명망가 위주로 구성된 시민단체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니 그 자체를 문제삼는 건 부당할 수도 있다. 문제는 책임윤리다. 이름 대여가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보니 자신의 이름에 대한 책임 의식이 박약하다. 공적 조직에 비상임 위원으로 참여한 경우, 문어발 참여를 하는 유명 인사는 워낙 바빠 출석은 거의 하지 않는 데도 밖으론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유명 인사가 참여했다는 사실만 알려진다.
이럴려면 차라리 이른바 ‘네임 밸류’가 좀 떨어지더라도 충실하게 참석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훨씬 좋을텐데도, 문어발 참여 인사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거나 못한다.
문어발 참여 인사에게 책임 의식이 있다면 그건 주로 ‘쉬쉬’ 하는 데에만 발휘된다. 자신이 이름을 빌려준 어느 단체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경우, 자신의 이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일을 공론화하는 걸 방해하는 선에서만 책임의식이 발동하는 것이다.
오랜 민주화투쟁이 우리에게 물려준 한가지 습속은 책임윤리의 과소평가다. 민주화투쟁은 책임윤리가 필요없는 운동이다. 물론 지나치게 과격한 투쟁을 선동해 일을 망쳤다면 책임윤리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투쟁의 지도자 그룹이 민주화투쟁의 성과를 팔아 출세를 한 뒤에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만 빠져 지낸다면, 이건 책임윤리를 넘어 지탄받아 마땅한 배신행위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민주화투쟁은 옳은 일이라서 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일은 없다.
우리 시민사회의 각종 결사체는 아직도 그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들이 볼 때에 옳은 일이니까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정의로운 고발이야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지만,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하려는 게 문제다. 그런 습속으로 인해 시민의 신뢰가 크게 상실되었는데도,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사회를 실험실로 여기는 발상, 자신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누군가의 음모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하는 기질, ‘결과’를 ‘의도’로 포장해 왜곡하고 자화자찬으로 자신을 위로하려는 습관 등은 이젠 버려야 할 구태다. 막강한 공적 책임을 진 지도자가 ‘일단 저지르고 보자’ 심리에 빠지면 사회적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 신뢰 떨어졌는데 심각성 못 느껴
책임윤리가 약한 사람을 무작정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딜레마라고 보는 게 옳다. 자신의 이름에 대한 책임의식이 너무 강해 아예 사회참여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자신의 몸 하나 돌보기에도 힘겹다며 겸양인지 엄살인지 알기 어려운 자세를 보이며 자신의 사적 영역에만 갇혀 지내려 한다. 모두 다 이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라. 아름답다고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정작 나서야 할 사람은 나서지 않고, 나서지 않으면 좋을 사람들은 열심히 나서는 현실도 바로 그런 딜레마를 말해준다. 정치가 영원한 딜레마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만 탓할 일은 아니다.
강준만(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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