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후배 세 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 모두 근간에 누군가로부터 담배 심부름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밤길, 놀이터 근처에서 만난 청소년들이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여자 후배들에게 저기 누나, 죄송한데 담배 한 갑만 사다주실래요, 라며 이천오백 원을 내밀었다고 한다.
부탁을 받은 후배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한 후배는 얌전히 심부름을 들어주었고, 한 후배는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앞의 후배는 아이들에게 구십 도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뒤의 후배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듣고, 후닥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후배는,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웃으면서 그 얘기들을 들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자정 무렵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갔다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일군의 청소년 무리를 실제로 만난 것이었다.
그들 손엔 천 원짜리 지폐가 들려 있었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심부름을 해줄 것인가, 훈계를 할 것인가, 절도를 할 것인가.
나는 그렇게 갈등하다가, 무언가 잊은 것 있는 사람처럼, 아차차, 혼잣말까지 해가며, 다시 뒤돌아 집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자존심에 상처받기 싫어서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거였다. 거 참.
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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